[임철순 칼럼] ‘우리의 두다멜’은 어디에

입력 2016-01-0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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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2015년을 10여 일 남기고 타계한 쿠르트 마주어는 독일 통일에 일조한 지휘자였다. 지휘봉 여러 개로 ‘호사’를 부리는 여느 지휘자들과 달리, 그는 언제나 맨손이었다. 교통사고로 새끼손가락을 다쳤기 때문이라지만, 지휘봉에 미련을 두지 않고 ‘맨손 지휘’로 좋은 음악을 만들어냈다. 원래 어떤 분야든 능숙한 달인은 도구의 도움 없이도 일을 잘한다. 녹음되고 인쇄된 것보다 육성과 육필이 더 소통에 효과적이지 않던가. 독일 통일 직후 동독 사람들이 그를 동독 대통령으로 추대하려 한 것은 ‘소통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지휘자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 관리와 총보 해석 능력이다. 그러나 음악을 완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다. 리더십은 원만한 소통과 조화로부터 나온다. 지휘자는 사실 무대 위에서만 지휘봉을 휘두르는 게 아니다.

베를린 필이 단원들과 불화를 겪던 ‘종신 독재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물러난 뒤 후임으로 선정한 사람은 ‘지휘대의 민주주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였다. 그 뒤를 이은 지금 지휘자는 ‘소통의 달인’이라는 사이먼 래틀이다. ‘독일의 자존심’ 베를린 필은 독일인에서 이탈리아인으로, 영국인으로 지휘자를 바꿔왔다.

카라얀과 지휘계의 쌍벽이었던 레너드 번스타인은 카라얀과 정반대되는 ‘배려와 타협의 지휘자’였다. 그는 주빈 메타에게 자리를 넘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런 그도 말이 많아서(원래 책도 낸 언어학자다) 단원들이 불편해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단원이나 악단의 운영자 행정가들과 원만하게 지내기는 참 어렵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남과 다른 열정이나 고집, 비타협에서 빚어진다. 그리고 상임 지휘자가 되면 악단의 모든 문제에 관여해야 하고, 계속 새로운 작품을 연습해야 한다.

상임 지휘를 통해 10년 동안 서울시향의 수준을 높여온 정명훈씨가 2015 연말 공연을 끝으로 예술감독 직에서 물러난 것은 그 자신은 물론 서울시민과 한국인들의 불행이다. 특히 부인의 허위음해 개입 의혹 등 개인적·윤리적 문제로 10년 공적이 바래게 된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향을 사조직처럼 움직여 왔다며 회계처리나 개별 영리활동의 문제점을 지적한 박현정 전 대표와의 갈등은 물론, 정씨의 도덕성 문제도 완전 해결된 것이 아니다.

서로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정명훈 이후이며 서울시향의 운영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연간 140여 회 공연에 10만 명 이상의 청중을 맞는 서울시향이 ‘정명훈 이후’에 대비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다. 지휘자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과 부지휘자, 즉 후계자 양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1인 독주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개인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규정과 절차가 무시되면 안 된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는 빈민촌 아이들을 위한 음악교육을 통해 사회가 공정해지기를 지향하는 활동이다. 이 제도를 통해 구스타보 두다멜(35)이라는 젊은 지휘자가 배출됐다. 열 살 때 엘 시스테마와 만난 그는 스물네 살에 지휘자로 데뷔했다. 우리의 음악적 자산은 베네수엘라보다 월등한데, 이런 제도와 교육활동을 운영하지 못할 리 없다. 시스템이 문제다.

정명훈의 마지막 지휘작이 베토벤의 ‘합창’이었던 것은 상징적인 일이다. 인류가 절멸하지 않는 한 계속 연주될 ‘합창’의 제4악장은 1~3악장에 나온 앞선 주제를 차례로 지우며 전개된다. 그리고 “오 친구들이여, 이런 곡조가 아니라 더 유쾌하고 기쁨이 가득 찬 것으로”라는 독창으로 진짜 주제를 펼친다.

그렇다. 이런 선율, 이런 곡조는 아니다. 정명훈 개인이나 음악계에만 관련된 말이 아니다. 사람을 기르는 모든 일에 해당된다. 어느 분야든 지도자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그 사람에게만 기대는 시스템을 지양하고, 다음 세대의 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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