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국민기업 포스코 ①] 정치 외풍에 결국 적자 수렁…녹슨 ‘제철보국’의 자긍심

입력 2016-02-22 11:40 수정 2016-02-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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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부패경영…산업 물론 국가경쟁력 추락 우려 목소리

“더이상, 포스코에 대한 자긍심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

포스코 입사한 이후 오로지 철강 기술에만 매진한 부사장급 현직 엔지니어의 발언이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최근 3년사이 가장 큰 변화는 포스코에 근무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가슴이 뛰던 자긍심이 사라졌다”며 무거운 표정을 짓는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을 대다수의 직원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코의 진짜 위기론을 어렵게 꺼냈다. 지난 30여 년 전 포스코 입사 이후 큰 버팀목이었던 민족기업의 자긍심이 부패와 탐욕이 만들어 낸 경영실패로 인해 하루아침에 허탈감으로 변질됐다. 그는 “포스코 직원들만 느낄 수 있는 삼성과 현대, LG 등 다른 대기업들과 차별화된 애사심의 부활이 전제될 때 진정성 있는 경영혁신으로 이어 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족이 세우고 국민이 주인인 ‘포항제철’ = 지난해 3월 여의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포스코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언짢은 심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됐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 3년차의 사정수사의 첫 타킷이 포스코였던 탓일까. 박 대통령이 ‘아버지가 어떻게 만든 기업인데 저렇게 망가뜨릴 수가 있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말이 돌았다.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 박정희 전 대통령이 40년 전인 1976년 5월에 직접 불을 지핀 포항 2고로가 4대기(代期)를 맞는 행사를 가졌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973년 포항 제1기 종합착공을 비롯해 2고로 화입(1976년), 3고로 화입(1978년) 등 총 12차례나 현장을 방문했다. 제철소 고로는 한 번 불을 지피면 내부의 내화(耐火)벽돌 수명이 다할 때까지 불을 끌 수 없어 계속 조업한다. 그러다가 고로의 수명이 다해 설비를 개체하면 1대기가 끝나는 것이다. 포항 2고로는 그간 3대기 동안 총 6900만 톤의 쇳물을 토해냈다.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의 상징이며 초석으로 통한다.

포스코의 탄생은 ‘영일만의 기적’으로 불린다. 지난 1960년대 경제 현실은 정치보다 더욱 암담했다. 당시 공업화의 완결판인 일관제철소 건립은 막대한 외화자금이 필요했다. 결국 1968년 4월 1일 창립을 선언한 포항제철은 35년간의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보상금인 대일청구권 자금 가운데 7370만 달러와 일본의 상업차관 5000만 달러 등 1억2370만 달러를 기초로 세워졌다.

이렇듯 포스코는 일제에 희생된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기업이다. 이후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경제발전에 든든한 뿌리 역할을 담당했다. 포스코에 단순하게 영리 추구에만 몰두하는 대기업이 아닌, 민족기업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은 당연지사다.

◇국민이 떠난 포스코, 결국 이념도 개념도 버렸다 = 포스코의 지배구조 변천사에는 ‘주인의 존재 여부’가 명확하다. 지난 1968년 포항제철주식회사로 출범할 당시 포스코는 공기업이었다. 이후 2000년대 민영화 작업을 거쳐 현재의 지배구조를 갖게 됐는데 포스코는 딱히 ‘대주주’라고 부를 만한 개인이나 세력이 없다는 특징을 지녔다.

포스코는 민영화 과정에서 배당금과 주식매각 및 양도 등으로 총 3조6115억원을 정부에 되돌려 줬다. 대일청구권 자금 등 정부가 과거 포스코에 공들인 2205억원을 이자까지 쳐서 되갚았다.

그 때문일까. 이후 포스코는 스스로 자초한 위기의 징후가 너무 뚜렷해졌다. 검은 이권을 노린 정권의 야욕과 자리 보전을 원하는 경영진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제철보국(製鐵報國·철강을 만들어 국가에 보답한다)’이라는 이념이 퇴색됐다. 민영화가 됐지만 주인은 없는 포스코의 해묵은 숙제의 출발이었다.

과거 포스코 임직원들 중에는 ‘포스코가 세계 1등’이라고 서심지 않게 표현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조강 생산량 기준으로는 세계 5위지만 품질과 기술력은 세계 1위라는 평가를 자랑스럽게 던졌다. 미국 철강전문지인 월드스틸다이내믹스(WSD)는 6년 연속 포스코를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 1위로 치켜 세웠다. 과거 민족기업 포스코인들의 힘이 들어간 어깨는 시기보다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정경유착 부실, 부패경영, 사상 첫 적자 등으로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철강 신화’의 주인공들의 어깨가 흔들리고 있다. ‘민족기업, 인간존중, 세계지향’그룹이념을 지닌 세계적 우량기업 포스코가 각종 부실경영에 철강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산업경쟁력은 물론 국가경쟁력이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만 들린다. 정권마다 휘둘리는 외풍기업으로 전락하면서 자부심도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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