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나 포털사이트 운영업체가 수사기관 요청에 의해 고객 신상정보를 임의로 제공한 것은 정당하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업체들의 고객 신상정보 제공 건수가 연간 1000만건이 넘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온라인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이 일 전망이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10일 차모 씨가 NHN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제공 요청이 있을 때 전기통신사업자는 구체적 내용을 살펴 제공할 필요성을 심사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은 법원이나 검찰, 수사관서의 장 등이 '형의 집행이나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고객정보를 요구하는 경우 업체가 이를 제공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이 규정을 근거로 네이버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은 이 규정이 강제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업체가 정보를 제공할 지 여부를 심사할 의무가 있다고 보고 50만원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재판부는 "오히려 전기통신사업자에 의해 이러한 심사가 행해지면 그 과정에서 혐의사실 누설이나 별도의 사생활 침해가 야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시했다. 또 "자료 제공으로 범죄에 대한 신속한 대처 등 중요한 공익을 달성할 수 있음에 비해, 제한되는 개인의 침해 정도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차 씨는 선고 직후 "유인촌 장관이 고소한 사람 중 '나는 절대로 사과 못하겠다'고 한 사람이 한 명 뿐이었다"며 "신상이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공포감이 생기게 마련인데, 어떤 정치적 의도가 없어도 게시물을 올릴 때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면 성숙하고 활발한 토론이 가능할 지는 의문이다. 점점 침묵하는 사회가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박경신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전기통신사업자가 고객 정보를 수가기관에 제공한 경우 제공사실을 통보해야 한다는 2심 판결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며 "이 사건에서는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차 씨는 2010년 3월 자신이 활동하던 네이버 카페에 '회피 연아'로 불리는 동영상을 게재했다. 벤쿠버 동계올림픽 선수단 귀국 당시 유인촌 장관이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 씨의 어깨를 두드리자 김씨가 이를 피하는 듯한 장면이 담긴 영상이었다.
유 전 장관은 동영상을 유포한 사람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종로경찰서는 네이버에 차 씨의 인적사항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네이버가 차 씨 등 2명의 ID와 실명, 주민번호, 이메일 주소, 휴대전화 번호, 가입일자를 경찰에 제공하자 경찰은 차 씨를 불러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조사했다.
이 사건은 유 전 장관이 고소를 취하하면서 종결됐는데, 네이버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경찰에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차 씨는 "동의를 받지 않고 개인정보를 제공한 책임을 지라"며 3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