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계절 ‘알림이’가 필요해

입력 2016-03-1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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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오시자/땅을 여는/저 꽃들 좀 봐요.//노란 꽃/붉은 꽃/희고 파란 꽃,/향기 머금은 작은 입들/옹알거리는 소리,/하늘과/바람과/햇볕의 숨소리를/들려주시네.//(하략)” 김형영 시인의 봄시 ‘땅을 여는 꽃들’이다.

서울 아차산에서 봄을 느꼈다. 나뭇가지마다 연둣빛 싱그러운 내음이 풍겨났고, 곧 땅 위로 얼굴을 내밀고 나올 작은 벌레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머지않아 꽃봉오리들도 분홍 자태를 드러낼 것이다. 온달교와 평강교 아래 계곡에서는 개구리들이 뒹굴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무 등에나 업히려 하는 녀석들은 북방개구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배를 하얗게 드러낸 채 죽어 있는 개구리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가는 척하던 겨울에 속아 성급하게 나왔다 얼어 죽었을 것이다.

기후변화로 생물의 출현 시기, 생활 주기가 달라지는 등 계절 구분이 복잡해지자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최근 ‘계절 알리미 생물종’ 50종을 발표했다. 북방산개구리와 계곡산개구리가 활동하고 제비가 찾아오면 초봄이다. 봄이 완연해지면 할미꽃 주위로 호랑나비가 날아다니고, 뻐꾸기와 노랑할미새가 둥지를 튼다. 노란색 원추리꽃이 고고한 자태로 인사를 건네고, 꾀꼬리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면 초여름이다. 한여름에는 밤의 사냥꾼 솔부엉이가 활발하게 활동한다. 은빛 억새로 뒤덮인 들녘에 고추잠자리가 날고 귀뚜라미가 울어대면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계절 알리미’란 용어가 영 거슬린다. 전통적인 우리말 조어법(造語法)을 깬 ‘알리미’를 바른말로 인정해야 할까? 소리 나는 대로 흘려 적는 ‘형태의 격식을 깬’ 대표적인 말은 ‘도우미’다. 1993년 대전엑스포 때 시민공모로 탄생한 이 말은 빠르게 세를 확장하더니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랐다. 행사 안내를 맡거나,남에게 봉사하는 요원을 말한다. 당시 우리말 연구자들 사이에는 문법적 시비가 이어졌다. 원형을 밝혀 쓴 깔끔이, 지킴이 등의 말과 달리 ‘도우미’는 우리말의 격식을 깼기 때문이다. 이후 엑스포 행사 주최측이 “도우미는 ‘도움을 주는 우리나라의 미인/관람객을 도와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라고 밝히면서 논란은 마무리됐다. 한마디로 도우미는 단순히 돕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우아함+미(美)’를 갖춘 사람이다.

‘알리미’는 알리는 사람과 알리는 물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사람을 의미할 경우에는 ‘알리다’의 명사형 ‘알림’에 의존명사 ‘이’가, 물건은 ‘알림’에 명사화 접미사 ‘-이’가 붙는데, 두 경우 모두 원형을 살려 ‘알림이’로 쓰는 것이 좋다. 한국철도공사의 ‘KTX 깨우미 서비스’, 많은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아이 돌보미 활동’도 본딧말인 깨움이, 돌봄이가 변형된 ‘깨우미’, ‘돌보미’라는 용어를 내세워 아쉬움이 크다. 물론 다리미, 꿰미 등 원형을 밝히지 않은 표준어들도 있다. 따라서 반드시 알림이, 깨움이, 돌봄이 등으로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순 없다. 하지만 이러다 우리말에 혼란이 일까 걱정이다. 재떨이, 옷걸이, 때밀이, 절름발이 등의 말에까지도 변화가 올 수 있어서다. 국가가 정한 법을 국민이 따라야 사회가 안정되듯 언중이 어문 규범을 지킬 때 말글살이가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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