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애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테러범의 아이폰 잠금해제에 성공하면서 국가안보와 사생활 보호를 둘러싼 공방이 제2라운드를 맞게 됐다.
미국 법무부가 작년 12월 발생한 샌 버나디노 총격사건 테러범의 아이폰 잠금해제에 성공해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취하했다고 2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법무부는 이날 성명에서 “FBI는 애플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테러범의 아이폰5C 잠금을 해제해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며 “현재 FBI가 데이터를 살펴보고 있다”고 소송 취하 이유를 밝혔다. 이어 “비록 FBI가 이번에 성공했지만 법 집행기관이 국가안보와 공공안전을 위해 중요한 디지털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우선순위’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보호에 미치는 악영향을 이유로 미국 정부의 아이폰 잠금해제 요구를 거부한 애플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양측이 첨예한 갈등으로 ‘아이폰 잠금해제’ 문제는 소송으로까지 번졌으나 법무부는 지난주 돌연 “제3자가 애플의 협조 없이도 총격범의 아이폰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다”며 “이를 시험하고자 공판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에 법원은 당초 22일로 예정됐던 공판을 미뤘다.
법무부는 이날 성명에서 아이폰 암호를 푸는 것을 도운 제3자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지난 23일자 기사에서 일본 선전자의 자회사이며 지난해 미국 정부기관에 모바일 기기 포렌식(과학적 범죄수사) 솔루션을 제공했던 이스라엘의 셀레브라이트가 바로 제3자라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정부가 이번 건에 대해서는 사실상 성과를 올렸지만 애플과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WSJ에 따르면 법무부는 범죄 조사와 관련해 현재 애플과 연관된 경우가 최소 15건 있다. 아울러 정부기관이 범죄나 테러는 물론 일반 개인의 정보에도 접근해 유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또 뉴욕타임스(NYT)는 애플 측 변호사들이 미국 정부에 아이폰을 해킹한 도구가 무엇인지 공개할 것을 요구해왔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정부는 이를 비밀로 지키려 할 것이라고 전했다.
애플은 법적 투쟁에서는 승리했지만 FBI가 제3자의 도움을 받아 아이폰을 해킹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애플이 그동안 강조해왔던 아이폰 보안이 퇴색하는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정부기관들은 최소한 최신 운영체제(OS)로 업그레이드되지 않은 기기들에 대해서는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을 얻게 됐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애플이 더 큰 혼란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보안에 구멍이 뚫린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FBI가 사용했던 도구가 아이폰의 어떤 허점을 공략했는지 그리고 최신 OS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