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이 일본 주식시장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블룸버그통신은 자체 조사한 결과, 일본은행이 닛케이225지수를 구성하는 90%의 기업에서 실질적 대주주로 올라섰다고 25일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지난 21일 시점에 닛케이225지수 구성 종목 중 200개사의 ETF를 총 8조 엔 어치 이상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미국 대형자산운용사 블랙록이나 뱅가드그룹보다 많은 액수다. 또한 일본은행은 이들 기업에 대한 지분율이 상위 10위 안에 들며 실질적 대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교세라나 닛세이제분의 경우, 내년 말이면 일본은행이 최대 주주가 될 전망이다.
이는 2010년부터 5년 넘게 금융완화 차원에서 일본은행이 지수 연동형 상장지수 펀드(ETF)를 매입해온 결과로, 일각에서는 일본은행이 오는 27~28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ETF 매입 규모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관제 증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앞서 일본은행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진이 이어지던 2010년 10월, 엔화 가치가 달러당 80엔대를 넘나드는 등 엔고가 진행되자 경기 부양 차원에서 ETF 매입을 결정했다. 당시 연간 매입 규모는 4500억 엔이었으나 구로다 하루히코 현 일본은행 총재가 그 규모를 계속 늘리면서 일본은행의 ETF 매입 규모는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2013년 4월에는 1조 엔, 그 이듬해 10월에는 3조 엔까지 늘렸다. 이어 작년 12월에는 시설 및 인력 투자에 적극적인 기업으로 구성된 ETF를 연 3000억 엔 규모로 매입할 계획을 발표, 이것이 적용된 지난 4일부터는 하루 12억 엔 어치씩 매입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닛세이기초연구소의 이데 신고 수석 주식 스트래티지스트는 “일본은행은 안정적인 주주로, 실적이 나쁘다고 해서 바로 파는 일은 없다. 또한 주가가 떨어질 때 사기 때문에 기업들이 안일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자산 매입 대상으로서 국채는 어쨌든 상환하면 자연 소멸되지만 ETF는 팔아야만 한다. 사면 시장 전체 주가는 오르지만 출구는 어떻게 할 지가 문제”라며 시장 왜곡 우려를 나타냈다.
일본은행이 지분율 상위 3위 안에 든 종목은 테루모와 아마하, 다이와하우스공업, 스미토모부동산, 미쓰비시머티리얼, 미쓰미전기 등이다. 이 가운데 미쓰미전기에 대한 지분율은 11%에 이르며, 유니클로를 전개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의 지분율도 9%나 된다.
일각에서는 일본은행에 의한 관제 증시 가능성을 우려하는 소리도 나온다. 호주 AMP캐피털 인베스터스의 네이다 나에이미 자산배분책임자는 “수치를 보면 꽤 많이 보유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일본은행은 거대 헤지펀드가 되고 있고, 헬리콥터 머니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본 증시의 닛케이225지수는 올 1분기(1~3월)에 2000엔 이상(12%) 하락했다. 그 기간에 해외 투자자는 일본 주식을 5조 엔, ETF는 3000억 엔을 순매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증시를 떠받친 게 일본은행이었다. 일본은행은 1분기에 6497억 엔의 ETF를 매입, 해외 투자자들이 매도한 만큼 흡수했다.
템플대학 일본 캠퍼스 아시아 연구학과의 제프 킹스턴 디렉터는 블룸버그에 “정부가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건 투자자들에겐 좋은 소식”이라면서도 “나쁜 소식은 주가의 밸류에이션이 왜곡돼 신뢰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27~28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일본은행이 ETF 매입 규모를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현재의 2배가 넘는 약 7조 엔으로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이 경우 2017년 말이면 일본은행이 닛케이225지수 구성 종목 약 40개사의 실질적 최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고 통신은 내다봤다.
미쓰이 스미토모 신탁은행의 세라 레이코 스트래티지스트는 “지금은 비상 수단으로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향후 일본은행이 빠져나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지가, 일본은행 대주주화가 잠재적으로 안고 있는 위험”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