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위기의 뿌리' 해양플랜트
#지난 23일 오전 10시 기자가 탑승한 차량이 옥포 거제대로에 들어서자 철골 크레인이 바다 위에서 군무를 펼치고 있었다. 조선소 야드 안에 들어서자 바삐 돌아가는 현장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해양플랜트를 생산하는 도크에서 생산직 근로자 한 명이 조선소 관계자의 안내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왜 찍노!”라며 쇳소리를 던지는 모습은 최근 강도높은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 불안감을 방증했다.
◇“해양플랜트 추가 수주해도 적자구조 면치 못해” = 이날 만난 김혁진(가명)씨는 30년 가까이 조선소 야드에서 근무하고 있는 생산직 근로자다. 그는 섭씨 30도를 육박하는 날씨에 긴 바지와 긴팔의 작업복을 입고 노란색 안전모를 들고 나왔다. 조선3사를 모두 경험했다는 김 씨는 해양플랜트 내업 쪽에서 10년이 넘게 일을 했다.
김 씨는 업황이 회복되고 수주가 늘어난다고 해도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는 적자를 면치 못 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설계 능력’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10년 전 그가 도면을 보고 배를 만들 때는 선행 공정률이 80%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은 30%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업성 평가와 기본설계 역량이 없는 우리 조선사들이 발주처 요구에 따라 설비 설계 경험이 거의 없는 중소 설계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함에 따라 발생하고 있는 고질적인 부작용이다.
김 씨는 “설계를 담당하는 외주업체가 수시로 바뀌고 담당자 역시 이동하는 일이 너무 잦아 설계도가 미완성인 경우가 태반”이라며 “특히 해양프로젝트는 설계 기술력 미달로 오작동되는 경우가 많아 재(再)작업이 다반사가 됐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 가운데 설계 실력이 가장 좋았던 곳으로 대우조선을 꼽았다. 그는 “과거 대우조선 도면은 90% 작업할 수 있는 월등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우조선의 설계 능력이 뒤쳐진 시기는 대략 10여전 전부터다. 대우조선 뿐만 아니라 국내 조선사들이 7~8년 전부터 설계에서 손을 뗐다고 한다. 김 씨는 “직영(본사)이 설계 도면 작성에서 빠지면서 모든 시스템이 바뀌었다”며 “직영 자체 인력이 부족해서 협력사나 외주업체가 작성하고, 직영은 검사 위주로 가는건지, 내부적인 속사정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설계능력 부족, 버려지는 자재… “배보다 배꼽이 더 커” = 대우조선 주력 부문인 상선분야 설계 능력은 그나마 경쟁사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다. 문제는 해양플랜트와 특수선사업부다. 김 씨는 “해양플랜트와 특수선의 경우 모두 외주를 준다”며 “한 번은 도면을 받고난 뒤 문제가 있어 해당 설계 회사에 전화하자, 10년 전에 없어진 업체였다”고 말했다.
해양플랜트 설계의 전문 인력 부족은 적자 구조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설계 기술력이 안되서 수주를 받아도 배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작동으로 인해 버려지는 자재가 많기 때문이다.
김 씨는 “해양플랜트를 수주하더라도 설계 능력이 부족해 적자구조를 면치 못할 것”라며 “지금까지 해양플랜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오작동으로 인해 차떼기로 자재를 버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고 말했다. 한 척당 실질 건조 비용이 예상 금액을 뛰어넘는 경우가 태반사라는 지적이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자재를 조달하는 물량팀의 불공정한 거래구조“라며 “현재 개선되기는 했으나, 과거 윗선에서 지정한 업체를 고집하다 보니 값싼 수입산 제품이 지속적으로 들어와 오작동의 주범이 됐다”고 지적했다. 해양플랜트 적자 원인이 인도 지연보다 미흡한 설계능력으로 인해 낭비되는 비용이 더 크다는 설명이다.
김 씨는 “설계미흡으로 인한 오작동으로 버리는 자재가 30%, 도면상 오류로 20%, 서류 코멘트 10% 하면 배 한 척당 들어가는 자재 중 60%가 실질적으로 낭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해양플랜트를 수주해도 설계능력이 개선되지 않으면 결국 지금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며 설계능력 개선을 가장 최우선으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