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대상인 기업이 감사를 실시할 회계법인을 스스로 정하는 자유수임제는 종업원이 회사 대표를 감시하게 해놓고 제대로 감독하길 기대하는 것과 같아요. 이제는 자유수임제 문제가 시정돼야 합니다.”
최근 연이어 불거진 회계법인 부실감사 문제에 대해 법무법인 한결의 김광중(39·사법연수원 36기) 변호사는 4일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김 변호사는 다수의 투자자들을 대리해 부실감사 책임을 묻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를 감독해야 하는 회계법인이 회사를 상대로 영업을 해야 해요. 그런 문제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대우조선이고요.”
김 변호사가 지적한 외부감사 자유수임제는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이전까지는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강제로 지정했지만, 감사비용 상승 등을 이유로 자유수임제가 원칙이 됐다. 감시기능을 해야 할 회계법인이 오히려 피감대상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이유로 강제지정제로 되돌아가자는 논의가 수차례 있었지만 회계법인과 재계의 반대로 도입되지 못했다.
김 변호사도 강제지정제가 능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외부 감사인이 기업 입장에서 ‘갑질왕’이었어요. 이런 폐해 때문에 기업들의 요구로 자유수임제가 도입됐죠.” 하지만 분식회계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를 생각하면 단점을 뛰어넘는 공익적인 필요성이 충분히 드러났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분식회계를 하더라도 들킬 가능성이 낮아요. 배상책임을 지더라도 분식회계를 해서 얻을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문제가 반복되죠.”
김 변호사는 외부감사 강제지정제 도입 외에 감사조서를 금융감독원에 보관하는 방안도 회계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고 설명했다. 회계법인이 감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를 기록한 일지인 조서를 회계법인이 자체 보관하면 상시 감리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김 변호사는 또 “회계법인에서 감사조서를 보관하다 보니 서류가 변조되거나, 소송에서 회계법인에 유리한 내용만 제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그는 분식회계 소송 초기에 감사조서를 미리 제출하게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우조선해양도 보세요. 안진회계법인에 이제야 감사조서 요구하고 받고 있잖아요. 회계법인에서 감사조서를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죠. 지정수임제를 시행하는 게 어렵다면, 감사조서를 금감원에 보관하는 건 상대적으로 이해관계 충돌이 적습니다. 그나마 성실한 조사를 강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어요.”
다만 김 변호사의 제안대로 하면 대형·소형 회계법인 간의 이해충돌, 기업 비밀이 외부로 유출되는 문제 등이 예상된다. 지금은 소규모 회계법인도 열심히 영업을 하면 감사업무를 수임할 수 있는데, 강제지정제가 시행되면 대형 회계법인 중심으로 일감이 몰릴 것이라는 게 업계의 우려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실력에 맞게 감사하고 감사인의 양심에 따르는 게 자유수임제지만, 이건 이상이라는 게 현실에서 확인됐다”며 “강제지정제 도입으로 인한 부작용은 일단 도입한 뒤 그때 가서 조정해도 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