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면에 사람 좋은 미소가 가득했다. 한 기업을 이끄는 수장이라기보다는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와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기업과 사업, 그리고 국내 벤처기업계에 대한 자신의 철학으로 화제가 옮겨가자 그의 얼굴은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기업가로 돌아와 있었다. 국내 1세대 벤처기업인이자, 벤처업계의 ‘대부’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을 11일 경기도 광주시 주성엔지니어링 본사에서 만났다.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에서 다시 기업인으로 = 황 회장은 “오랜만에 기업인으로 돌아와 다시 사업을 하려니 기운이 솟는다”며 “돌아온 만큼 열심히 노력해 기업을 올려놓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해 만들었던 청년희망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 약 7개월간 활동하다 최근 사임하고, 기업인으로 돌아왔다. 과거부터 박 대통령과 연이 깊어 벤처기업계 현안에 대해 여러 조언을 해왔던 만큼, 그는 청년희망재단 초대 이사장으로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처음 조직된 재단이어서 힘든 것이 많았지만, 황 회장은 “시도 자체가 절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청년희망재단 운영 과정에서 내가 잘한 건 없지만, 재단 자체가 만들어진 것 자체로도 90% 이상의 사회적 역할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보여줬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고, 나머지 10% 부분은 천천히 함께 만들어가면 된다고 본다”고 밝혔다.
힘들었던 부분은 초대 이사장으로서 성과를 빨리 보여줘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었다. 청년희망재단은 지난해 10월 설립돼 올해 12만5000명에게 일자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6300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로 운영됐다. 조성 4개월 만에 1300억 원의 청년펀드 자금도 조성됐다. 박 대통령도 ‘1호 기부자’로 등록해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황 회장은 “펀드자금 1300억 원을 갖고 모든 사회적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아 이사장 재직시 항상 스트레스가 나를 괴롭혔다”면서 “이 같은 인식에 대해 항변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또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언급했다.
7개월간의 초대 이사장 역할을 했던 황 회장은 지난 5월 자리에서 내려왔다. 일단 큰 의미에서 청년희망재단이 출항을 했고, 초기에 제 역할을 다했다는 생각에서다. 더불어, 최근 주성엔지니어링의 일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한 이유가 됐다.
하지만 2010년 이후 경기침체로 관련 산업이 위축되자 주성엔지니어링도 위기를 맞았다. 매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적자폭도 늘었다. 2014년까지도 주성엔지니어링의 당기순손실은 208억 원에 달했다. 황 회장은 “벤처 버블 붕괴, 외환위기(IMF)를 다 겪었지만, 2010년 이후 3~4년간처럼 어려운 시기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황 회장은 끈질기게 R&D에 고집했다. 자체 개발한 ‘원자층증착(atomic layer deposition·이하 ALD)’ 장비가 업계에서 빛을 보면서 점차 회사의 부활을 이끌었다. ALD는 반도체 웨이퍼에 얇은 가스막을 덧입히는 역할을 하는 장비다. 기존 화학기상증착(CVD) 장비에 비해 100분의 1 수준으로 가스막을 얇게 만들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황 회장은 “반도체는 이제 ALD 아니면 안 되는 시장이 됐고, 이미 정착기로 전환된 상태”라며 “디스플레이도 플렉시블 쪽으로 가고 있어 ALD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기술에선 일본기업들이 주도권을 가졌지만, 앞으로의 시장에선 원천기술을 모두 갖고 있는 한국과 주성엔지니어링이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며 “글로벌 기업들도 ALD가 차기 핵심기술이라는 것은 모두 인정하고 있어 향후 성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지난해 매출 1756억 원, 영업이익 65억 원을 기록했다. 황 회장은 올해는 반도체 분야가, 내년에는 디스플레이 분야의 실적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위기 속에 혁신의 기회가 있는 만큼, ‘난세의 영웅’이 되고자 하는 포부도 내비쳤다.
황 회장은 “올해 매출은 지난해 대비 50% 성장을 목표하고 있다”며 “혁신은 힘들 때 나오는 법이다. 이 시기에 얼마나 속도감 있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