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중앙은행(RBI)의 라구람 라잔 현 총재의 후임으로 우르지트 파텔 현 RBI 부총재가 임명됐다고 20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파텔은 라잔이 물러나는 다음 달 4일부터 3년간 RBI를 이끌게 된다.
인도 정부가 현 RBI 임원진 중에서 신임 총재를 뽑은 것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중시하는 라잔 총재의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신호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했다. 마드하비 아로라 코탁마힌드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파텔을 지명한 것은 라잔 체제가 계속된다는 것을 뜻한다”며 “정부가 라잔보다 좀 더 ‘비둘기파’적인 인사를 원했다면 파텔 대신 다른 사람을 뽑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3년 RBI 총재에 오른 라잔은 미국 달러화에 대한 루피화 가치 하락에 제동을 걸고 물가상승률을 낮춰 시장의 지지를 얻어왔다. 당초 연임될 것으로 예상된 라잔이 지난 6월 사임한다고 밝히자 인도 정부의 중앙은행에 대한 임김에 세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일부 정치인과 기업계 인사들은 라잔이 통화정책 이외 다른 이슈에 대해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털어놓고 경기부양에 소극적이라며 비파적인 입장을 표시해 왔다. 여전히 해외 투자자들은 RBI의 독립성을 지킨 라잔을 신뢰했다.
52세의 파텔은 지난 2013년 부총재에 임명됐으며 RBI가 통화정책과 물가에 대한 판단을 기존 도매물가지수(WPI)가 아니라 소비자물가지수(CPI)에 기반해 판단하도록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WSJ는 전했다. 그는 RBI에 물가 목표 범위를 권하는 위원회의 수장으로 있었다. 이전에 RBI는 경제성장률과 고용, 환율과 물가상승률 등 다양한 지표를 가지고 정책을 결정했기 때문에 통화정책 불확실성을 고조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인도는 지난 3월 마감한 2015 회계연도에 7.6% 경제성장률로, 주요 경제국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건설 등 경제활동이 둔화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물가는 여전히 높아 파텔은 인플레이션 억제와 경기부양이라는 서로 모순된 과제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인도의 지난 7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6.07% 상승했다. 이는 지난 3월 이후 CPI 상승률이 1%포인트 이상 오른 것이며 RBI 물가 목표인 5% 이하도 웃도는 것이다. 같은 기간 인도 수출은 2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파텔 신임 총재는 또 기준금리 인하 압박도 강하게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라잔 현 총재는 재임 기간 다섯 차례 기준금리를 낮췄으나 인도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대출금리가 높다고 불평하고 있고 집권 여당 내에서도 이런 불만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울러 파텔의 권한도 상당히 축소됐다. 이전까지는 금리인상을 총재 혼자서 결정했으나 이제는 6명으로 구성된 통화정책 위원회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 여전히 정책을 놓고 의견이 팽팽하면 RBI 총재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