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많은 고통을 겪었던 1998년 IMF 경제위기의 원인은 과도한 기업부문의 부채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GDP 대비 기업부문의 부채비율은 350%라는 놀라운 수준까지 올라갔었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같이 겪었던 태국이 240%, 인도네시아가 190% 수준임을 감안하면 기업부문의 부채비율이 얼마나 높았던 것인지 알 수 있다.
당시 부족했던 국내 자본 때문에 많은 기업들은 부채를 해외에서 달러로 조달한 반면, 그러한 부채로 조달한 투자의 효율성이 떨어지다 보니 결국은 외환위기를 맞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일본은 우리가 모두 주지하다시피 1990년부터 시작된 고통스러운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버블경제 붕괴의 후유증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도 결국은 과도한 부채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GDP 대비 민간부문 부채(Private Debt: 기업부문 및 가계부문의 부채를 합한 수치) 비율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130%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급등하기 시작하여 버블경제 당시인 1990년, 결국 최대치인 200%에까지 달하게 된다. 그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14년 기준 약 160%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러면 미국은 어떠하였는가? 미국의 경우 GDP 대비 민간부문 부채 비율은 1950년대에는 55% 수준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급증하기 시작하여, 급기야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는 1950년대의 3배 수준에 달하는 173%까지 급증하였다. 그 결과 금융위기를 겪게 되었고, 그 이후 고통스러운 ‘부채축소’ 과정, 즉 소위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을 겪고 난 이후 현재에는 이 수치가 150%대까지 하락하여 안정화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우리나라의 IMF사태를 불러온 기업들은 이제 어떠한가? 한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민간기업의 부채 총액은 2015년 9월 말 기준 1631조 원으로, GDP 대비 106% 수준까지 낮아졌다. 대기업의 경우 자본금 대비 부채비율이 IMF 당시에는 400%를 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가, IMF 당시 호된 경험을 토대로 꾸준히 부채 축소를 진행하여 2015년 101.2%에서 올해는 금융위기 후 처음으로 100% 이하인 98.2%까지 하락하였다.
이처럼 IMF 이후 기업들의 부채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자, 돈을 빌려주어야 살아갈 수 있는 은행의 입장에서는 기업대출 대신에 일반 가계를 대상으로 한 가계대출을 늘려 나가기 시작하였다. 일반 가계들은 기업보다 돈을 떼일 염려도 적고, 주택이라는 든든한 담보도 있는 데다 주택가격이 2000년대 이후 계속 상승하자, 모든 시중은행은 위험한 기업대출 대신에 가계대출에 올인하는 영업형태를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그 결과, 가계부채가 천문학적으로 높아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즉 큰 그림으로 보자면, IMF 경제위기의 주범이었던 기업부채가 이제는 가계부채로 이름만 바꾼 형국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차이점은 당시 기업부채는 상당 부분이 달러 표시 외채로 조달된 반면 현재의 가계부채는 원화 표시 국내에서 조달되었다는 점 때문에 외환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지만, 과도한 부채가 초래하는 부작용이라는 근본적인 측면에서의 우려는 변한 것이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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