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에 전 세계 무역을 잇는 바닷길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전세계 50개 항구에 묶인 한진해운 소속 선박은 89척. 이 선박과 함께 140억 달러 규모 물류의 발목이 잡혔다. 옷에서부터, 핸드백, TV, 세탁기 등 품목도 다양하다. 추수감사절을 시작으로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연말 대목을 앞두고 가장 바빠야 할 해운업계가 유령선으로 전락한 한진해운 때문에 올 크리스마스 대목을 망칠까 우려하고 있다고 최근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물류 공급업자들에게 9, 10월은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보다 더 중요한 시기다. 11월 셋째 주 추수감사절에 이어지는 연휴에 진행되는 쇼핑 대목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물류 업체들이 지금 이 순간을 대목이라고 꼽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9월 중순인 현재, 상품을 실어나르는 해운회사들이 가장 바쁠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 7위의 해운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대륙 간, 국가 간 상품 운송에 차질이 생겼다.
삼성 측은 “한진해운 선박에 3800만 달러어치의 가전제품과 영상 관련 기기가 실려 있다”며 “화물을 즉시 하역하지 않으면 적어도 16개의 전세기로 화물을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납품 기한을 맞추려면 돈을 더 주고서라도 항공 수송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세계 두 번째 TV 생산업체인 LG전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LG는 “상품 운송을 위한 새로운 운반 업체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한진해운 선박이 항구에 정박하지 못하면서 덩달아 선원들도 바다 한가운데 발이 묶였다. 현재 선박 1척당 약 24명의 선원이 탑승해 있다. 향후 몇 주간 버틸 수 있는 식량이 남아있긴 하지만 일부 공해상에 있는 선박은 식수와 음식 공급 요청을 거부당하는 경우도 있어 식량난까지 우려된다.
이런 가운데 한진해운 사태에 경쟁업체들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한진해운의 공백으로 운임은 단기간에 치솟으면서 경쟁업체들의 단기 수익성이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홍콩에서 로스앤젤레스(LA)까지 해상운임은 전년 최고치에 비해 40% 치솟았다. 세계 1위 해운사인 머스크라인은 한진해운 사태로 인한 특수를 점치고 있다. 머스크라인은 “단기적으로 운임이 오르고 신규 고객이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머스크라인의 클라우스 루드 사일링 동서 항로 최고책임자는 “고객들로부터 ‘안정적인’ 파트너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그들은 재정적으로 튼튼한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머스크라인은 지난 7일 한진해운의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아시아-미국 서부를 잇는 신규 노선을 새로 연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진해운 사태의 반사이익을 노리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에 사일링 책임자는 현재 머스크라인이 7.5%를 점유하고 있는 아시아-미주 노선은 향후 0.6%포인트 올라 8.1%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2위 업체인 현대상선도 한진사태 수혜 기업으로 손꼽힌다. 현대상선은 물류 혼선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에 대체 선박 13대를 공급키로 했다.
일각에서는 한진해운 사태가 글로벌 해운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씨티그룹은 향후 수주 안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전세계적으로 재고 부족이 발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