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그룹(WBG)은 양성평등과 여성친화가 ‘시스템’이 되어 있는 기관이다. 부총재(Vice President)급에도 여성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피부색, 출신국도 다양하다. 개발도상국의 교육과 건강, 행정, 인프라 스트럭처, 금융 및 민간부문 개발, 농업과 환경 증진 등을 위한 곳이라는 태생 자체가 그런 다양성(Diversity)의 씨앗을 뿌렸을 수도 있다. 다양성과 포용성(Inclusion) 추구가 자연스러운 조직이 됐다. WBG 산하 국제투자보증기구(MIGA)는 아예 조직의 1, 2인자라 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여성이고, 국제금융공사(IFC) 부총재 역시 여성이다.
카린 핀켈스톤(Karin Finkelston) MIGA COO 겸 부총재는 여성에게 주어지는 도전적 환경을 개선하고 여성의 경제 활동을 증진하는 것이 WBG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2016 대한민국 여성 금융인 국제 콘퍼런스’ 기조 연설자로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카린 핀켈스톤 부총재는 27일 이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가 성장률을 진작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많지만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경우는 적다”며 “여기엔 일과 가정의 병행이 도전 과제가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태생, 명문 다트머스대를 거쳐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적잖은 금융권 이력 등 ‘출세 코스’를 밟아왔고 WBG에서도 올해로 20년째 트랙을 돌고 있는 핀켈스톤 부총재. 그는 여자만 둘인 집에서 꽤 자유롭게 성장했다. 직장과 상사운도 따랐다. 첫 직장인 투자은행(Manufacturers Hanover Trust Company)에서 첫 상사는‘워킹맘’ 부장이었다.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상사처럼 “나도 보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키웠다.
아시아는 그에게 특별하다. 리더십이란 다양성과 포용성임을 깨닫게 해준 곳이다. 1988년 홍콩 지점으로 옮겨 아시아의 성장을 목도했던 그는 MBA를 마친 뒤 아시아 발전에 승부를 걸기로 결심하고 IFC를 통해 돌아온다. 그러나 문화는 여전히 너무 달랐다. 외국인이라곤 자신 혼자인 회의에서 “이건 어때요?”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걸 ‘제안’이 아니라 ‘지시’로 깨닫고 이행하곤 했다. 난감했다. 마음을 터놓고 토론하고 결론을 도출했던 미국 문화와는 너무 달랐다.
“가장 중요한 건 이해하려는 자세로 경청하는 것이었어요. 다양한 생각을 말할 기회를 주는 것. 그런데 여성들이 너무 없었어요. 국장급까지 여성이라곤 한 사람도 없던 곳(IFC 아시아태평양)에 나중엔 3명의 매니저급 여성을 기용했죠. 능력 있는 여성에게 기회를 주고 훈련하고 잠재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여성들이 ‘나도 그걸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게 기용하고 키워줘야만 합니다.”
하루 3시간 정도의 수면시간을 유지한다는 그에게 ‘일벌레’라 여기까지 온 게 아니냐 묻자 시차와 바쁜 일정 중에 지쳤던 눈을 빛내며 “개도국의 발전과 투자에 나서는 이 일에 엄청난 자부심과 열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일을 열심히 하는 거지 성공욕에 불타는 건 아니다”라며 웃는다.
그는 4년 전 결혼했다. “싱글일 땐 일과 삶의 균형은 문제없었는데 결혼하니 쉽지는 않다(웃음)”며 “그래도 여성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조직과 남편이 있어 행복하게 일한다”고. 여성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더 자세한 이야기는 콘퍼런스에서 풀어놓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