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시즌이 시작되면서 재계 임원들이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연말 조직개편과 임원인사를 위한 임직원 평가가 시작된 가운데 주요 사업부 임원들은 한층 더 몸조심을 하는 모양새다. 본인의 사업 성과를 외부에 알리기 위한 움직임은 10월을 기점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인사 시즌에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재계 임원들 사이에서 하나의 불문율이다.
실제로 10월 들어서는 인터뷰는 물론 수상까지 거절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사 당일 몇 시간 전에도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사인 만큼 인사 발표 시점까지 몸가짐을 조심히 하는 것이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A 씨는 인사 시즌 최대한 인사팀의 귀에 본인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소에는 다른 부서 및 팀 등에 사업 성과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는 인터뷰를 통해 외부에 우리 부서를 알리려는 시도를 많이 한다”며 “하지만 연말에는 자칫 자랑으로 보일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일절 금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인사팀은 인사 시즌이 아니라 평소에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임원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며 “보통 때에도 이런데 승진 등 연말 인사를 앞두고 보여주기식 행동이 부각되면 오히려 당사자에게 마이너스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회사 내 동료 및 선후배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오가는 평가나, 특히 주요 거래선이 언급하는 내용들이 그 임원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잣대로 활용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오너그룹은 임원이 내외부에서 필요 이상의 행동을 보이면 인사에 부정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주요 임원들은 인사 시즌에는 구체적인 수치와 향후 전망 등 공개된 정보 이외의 내용을 말하는 데 더 주의를 기울인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긍정적 대답으로 유추할 수 있는 미소 등 사소한 몸가짐도 조심한다.
상황이 이런 만큼 연말 인사 전에는 사실상 제대로 된 업무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인사 직전 한 달은 업무가 마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글로벌 기업의 경우 주주총회 의결사항이 필요한 인사 외에는 정기인사 시즌이 없어 대조된다. 필요에 따라 즉시 인사를 하는 만큼, 빠른 의사 결정은 물론, 불필요한 동요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하반기 3개월은 내년 사업방향과 투자계획, 실적목표 등을 세워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지만, 인사를 앞둔 불안감에 업무에 매진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라며 “특히 실적이 좋지 않거나 큰 사업적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사업부 수장과 임원은 물론 직원들도 마음잡고 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