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선박 신조 지원 프로그램(이하 선박펀드)을 서두르는 이유는 수주절벽에 놓인 대우조선해양 지원과 현대상선의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박펀드는 일반 금융기관과 정책금융기관, 해운사가 설립하는 사모펀드(PEF)라고 보면 된다. 펀드 성사 가능성을 위해 해운사도 지분 투자(10%)에 나서도록 구조를 짰다. 이들이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는 조선사와 건조계약을 맺고 선박을 발주한다. 즉, 은행과 산은, 수은 등 정책금융기관이 배의 주인인 셈이다. SPC는 지분 투자자인 해운사와 용선 계약을 맺어 투자자들에게 원리금과 배당금을 지급한다. 해운사는 선박 매입 옵션을 걸어 용선 종료 시 매각 및 선가하락 리스크를 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는 국적선사(현대상선)가 운임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초대형 컨테이너선 신조에 우선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펀드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컨테이너선, 벌크선 등 선종을 다양화하기로 했다.
문제는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선박펀드의 활용 방안과 현대상선이 고려하고 있는 펀드 사용처가 다르다는 점이다. 현대상선은 비용과 사업 포트폴리오를 따져 선박 신조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용선료가 낮아진 상황이라 선박을 발주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선박펀드를 통해 선박 신조뿐만 아니라 중고선 매입, 터미널 인수 등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에 요청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과 채권단 내부에서는 선박 신조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선박펀드 지원이 더 급한 쪽은 대우조선해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초 수주 목표치를 110억 달러로 잡았으나 수주 가뭄이 예상보다 심각해 목표치를 35억 달러로 낮췄다.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13억 달러를 수주하는 데 그쳤다. 이는 최근 5년간 평균 수주액 123억 달러 대비 10%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수주 가뭄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올해 수주액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35억∼36억 달러)도 안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선박펀드를 통해 수주에 성공하면 유동성에 도움이 되지만 대우조선해양의 수주난과 유동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채권단 관계자는 “5000만 달러 규모를 수주하면 선수금이 들어와 유동성에 도움은 된다”면서도 “이를 통해 대우조선해양이 살아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