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현상 메디프론디비티 대표이사는 최근 바이오스펙테이터와의 만남에서 2009년 독일에서 그루넨탈(Grenuethal)사의 연구소장인 클라우스 랑그너(Dr. Klaus langner)를 만난 일화를 끄집어냈다. 1999년 설립돼 당시 10년째를 맞은 메디프론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통증치료제 개발 중단위기와 설득, 그리고 반전
그해 그루넨탈로부터 신경병성 통증 치료제 'MDR-4938'의 이상발열 부작용 발생을 통보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MDR-4938은 2005년 그루넨탈과 4000만 유로에 기술이전 및 공동개발 계약을 맺어 메디프론의 이름을 국내외에 알린 핵심 파이프라인이다.
MDR-4938은 캡사이신과 유사한 분자구조를 가진 바닐로이드 수용체를 차단해 진통 효과를 내는 물질로 부작용과 내성의 한계에 부딪힌 마약성 진통제를 뛰어넘을 차세대 진통제로 주목받았다. 다수의 글로벌 제약사들이 이 타깃을 겨냥해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임상과정에서 사망을 불러온 심각한 이상발열이 문제였다. 2009년 머크가 이상발열로 임상 2상을 중단했고 애보트 GSK 등도 같은 이유로 개발을 포기했다. 같은 타깃의 독일 그루넨탈이 메디프론 프로젝트 중단을 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독일까지 찾아간 묵 대표의 설득은 그루넨탈의 결정을 번복하게 했다. 게다가 100만 유로라는 추가 연구비까지 지원받았음은 물론이다. 묵 대표는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각국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마약성 진통제 의존율이 높은 그루넨탈이 메디프론 프로젝트를 포기하면 안된다고 설득했고 결국 받아들여졌다"고 회상했다.
반전은 바로 다음해에 나왔다. 2010년 해외 연구진에 의해 바닐로이드 수용체의 이상발열 발생기전이 밝혀진 것이다. 바닐로이드 수용체 기전에서 산성지수(pH)를 억제했을 때 이상발열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다.
2013년 메디프론과 서울대 약대 연구팀은 이상발열이 없는 바닐로이드 수용체 차단제(MDR-16523) 개발에 성공했다. 후발주자였던 메디프론과 그루넨탈은 어느새 내년 유럽 1상에 진입하는 선두주자가 됐다. 뒤이어 뛰어든 화이자와 암젠은 아직 전임상단계다.
묵 대표는 "2005년 기술이전한 프로젝트가 이제 임상 1상에 진입하면 너무 더딘 것 아니냐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상발열의 문제를 해결한 2013, 2014년이 프로젝트의 시작"이라면서 "독일 그루넨탈은 차세대 먹거리로 신경병증 통증 치료제를 선정하고 집중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디프론은 바닐로이드 수용체 기전을 이용해 2014년부터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암센터(NCI)와 패치제(MDR-652)를 공동개발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제약회사와 물질이전 계약(MTA)도 맺었다. 만성폐쇄성 폐질환(COPD) 치료제로의 개발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메디프론은 중추신경계(CNS) 질병 치료 전문 신약개발기업을 꿈꾸며 출발했다. IT·증권 분야에서 활약했던 묵현상 대표와 6명의 과학자가 뭉쳐 만든 회사다. 묵 대표는 "CNS, 특히 통증과 알츠하이머성 치매 분야에서는 세계 1등 의약품을 보유한 회사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신경병성 통증(Neuropathic Pain)에 버금가는 메디프론의 핵심 타깃 질환이다. 이 중 '레이지(RAGE) 억제제 신약 후보물질'은 2010년 스위스의 다국적제약사인 로슈와 공동연구 및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정액기술료로 최대 2억9000만달러(약 3200억원)를 받는 계약으로 상품화에 성공할 경우 로열티도 뒤따른다.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는 뇌속에 베타아밀로이드가 축적, 응집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베타아밀로이드가 발병의 원인인지 발병의 결과물인지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바이오젠의 항체치료제 '아두카누맙'이 베타아밀로이드를 효과적으로 제거했고 이에 따라 인지향상 효과를 관찰하면서 베타아밀로이드는 치매치료의 핵심 열쇠로 주목받는다.
'RAGE'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원인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혈액으로부터 뇌 속으로 진입하는 것을 매개하는 수용체다. 이 수용체를 차단해 베타 아밀로이드가 뇌 속에 침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알츠하이머를 치료한다. 올해 말 국내 1상을 마무리하는 'MDR1339' 역시 눈여겨볼 파이프라인이다. MDR1339는 알츠하이머의 원인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의 응집을 억제하고 응집된 베타아밀로이드의 독성을 차단한다. 원리상으로는 가장 근원치료에 가까운 접근법이다.
당초 MDR1339는 대웅제약에 기술이전됐다가 올해 3월 반납됐다. 묵 대표는 "글로벌 임상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웅제약은 600억 이상 투입되는 임상비용과 개발 리스크를 감안해 글로벌 임상에서는 손을 떼기로 한 것"이라면서 "안전성이나 효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한번의 반전이 일어났다.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는 2상만 완료되면 국내 시판을 허용하겠다는 정부 규제완화책이 곧바로 나온 것이다. 메디프론은 해외 임상과 국내 임상을 병행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해 내년 상반기 국내 2상에 돌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최근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와 포괄적 연구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메디프론의 알츠하이머성 치매 조기진단 키트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전세계적인 고령화에 따라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를 조기에 진단하는 기술의 가치 역시 몸값이 오르고 있다. 키트는 혈액 속의 베타아밀로이드의 농도를 분석해 치매 환자를 스크리닝할 수 있다.
묵인희 서울의대 교수팀이 미래창조과학부 지원으로 개발했으며 현재 메디프론이 임상적 검증을 통해 키트의 검출능력을 시험중이다. 최근에는 체외진단기기 개발 전문기업인 퀀타매트릭스와의 키트 양산 및 측정기기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도 맺었다.
메디프론은 2011년 세계 최초의 알츠하이머성 치매 조기진단 키트를 개발했으나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의해 품목허가를 반려당했다. 이후 전세계적으로 3개의 키트가 허가를 받았는데 모두 고가의 양전자단층촬영장치(PET) 진단을 활용한 것으로 시장성이 부족했다. 메디프론은 이들 기기와 비교 연구를 통해 성공적인 데이터를 확보했다.
묵 대표는 "최근 알츠하이머성 치매 의약품 개발이 활발한데다 치매예방 교육인 핑거프로그램이 확산되면서 조기 진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내년까지 정확도를 80%에서 90%까지 올려 국내 허가를 받는 것이 목표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알츠하이머성 치매 조기진단키트는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차세대 의료기기 100프로젝트 지원 대상에 선정되면서 상품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묵 대표는 "2019년 국내 50만명의 데이터를 가지고 미 FDA 승인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약개발 핵심은 리스크매니지먼트..길리어드 모델 따를 것"
묵현상 대표는 사실 IT·금융업계에서 성공한 경험을 가진 CEO다. 묵 대표는 1988년부터 삼보컴퓨터에서 해외사업을 총괄했으며 미국 현지에 군수용 노트북 개발 판매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2000년 국내에 들어와 겟모어증권사를 설립하는 등 증권업계에도 몸 담았다. 바이오업계에 뛰어들게 된 것은 동생인 묵인희 서울의대 교수의 권유 때문이었다.
묵 대표는 신약개발기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스크 매니지먼트라고 강조했다. 그는 "신약 개발 성공률은 하늘에 운이 닿았다고 해도 20%에 불과하다"면서 "언제나 다른 백업을 준비하는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메디프론이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관련한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조기진단 키트 시장 진출도 이런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결과물이다.
우수한 연구인력 역시 신약개발기업의 필수 조건이다. 메디프론의 경우 지난 16년동안 퇴직한 연구원이 2명에 불과할 정도로 탄탄한 팀워크를 자랑한다. 묵 대표는 "우리 연구원들은 글로벌 회사들과 함께 연구하면서 노하우를 쌓았다"면서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메디프론을 미국의 길리어드사이언스와 같은 기업으로 키우고 싶다고 강조했다. 묵 대표는 "길리어드는 라이선스 아웃을 통해 수익을 내 결국 자체 임상까지 진행하면서 글로벌 제약사가 됐다"면서 "우리 역시 라이선스 아웃으로 2억불을 확보한다면 단독으로 글로벌 임상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