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2008년 4월 18일 광우병 위험 부위의 수입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된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광우병 공포가 확산되면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3개월여간 지속됐다. 이로 인해 52%였던 지지율은 21% 곤두박질쳤다. 임기 말에는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과 자원외교를 이끈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 대통령의 멘토로 불렸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각각 로비 자금 수수와 파인시티 인허가 비리로 구속되면서 정권의 국정 동력이 상실됐다.
노무현 정부는 취임 초 소통 강화로 60%의 높은 지지율을 얻었지만 대북 송금 특검과 이라크 파병, 분양가 원가 공개 거부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졌다. 2004년에는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면서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여기에 친형 노건평 씨의 땅 투기 의혹과 측근들의 불법 선거자금 논란 등으로 레임덕을 맞았다.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분열까지 겪으면서 12%라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 실시와 역사바로세우기 정책 등으로 70~80%의 지지율을 얻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과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도 한몫했다. 잘나가던 김 대통령은 IMF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집권 말기에는 차남 김현철 씨가 정태수 회장의 한보건설과 당진제철소 등에 대한 정부 지원 및 대출 청탁과 국정감사 무마 청탁 명목 로비에 연루돼 금품수수, 세금포탈 의혹을 받으면서 6%의 지지율로 임기를 마무리했다.
김대중 정부는 IMF사태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71%의 지지를 받았다.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의 업적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레임덕 길목인 3년 차 말에도 54%의 지지율을 얻었다. 그러나 아들의 비리가 발목을 잡았다. 4년 차에 차남 김홍업 씨와 3남 김홍걸 씨가 나란히 구속수사를 받는 등 악재가 터지면서 지지율은 24%까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