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정부에 따르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되면서 국정 공백이 우려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매년 11월은 각 부처가 내년도 업무계획의 골격을 그리는 시기다. 이를 토대로 12월에는 정부 부처별로 내년도 업무계획을 마무리하고 새해 1월에 대통령 업무보고를 순차적으로 진행해 왔다.
하지만 최근의 정부 상황을 들여다보면 내년도 업무계획을 제대로 구축할지도 의문이다. 정부의 최고 정책 심의회의인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 이후 6주째 참석하지 않고 있다. 각 부처에 속한 주요정책 등을 다루는 국무회의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 뒤 부처의 움직임도 급격히 둔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일부 부처에서는 주요 일정을 연기하거나 판단을 내리지 못해 보류하는 현상을 빚고 있다.
◇국정마비 장기화 조짐 = 검찰이 최순실 게이트의 피의자로 박 대통령을 지목한 데 이어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조사까지 앞두고 있어 국정 운영이 더 꼬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마지막으로 주재한 시점은 지난달 11일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시점부터 한 달 보름간 자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검찰이 박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대면조사를 앞둔 상황에서 조만간 시작될 국정조사와 특검까지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각 부처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청와대에 속한 공무원들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여기에 검찰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직무유기 의혹과 관련,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산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분위기는 최악으로 흐르고 있다.
청와대의 지원군이 돼야 할 여당은 사분오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겠다”고 선언하면서 도리어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정청 라인은 와해된 상태다.
그렇다고 이달 초 개각 대상자에 포함됐던 황교안 국무총리나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대통령과 경제수석 등 청와대 중심의 컨트롤타워가 무너진 상황에서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에 이어 장차관까지 정책시스템의 오작동이 생기고 있다.
◇정부, 내년도 업무계획 등 잇따라 업무차질 예상 = 국정 난맥상은 각 부처의 움직임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매년 11월에는 부처별로 ‘2017 업무계획’을 수립해 12월 말까지 국무조정실에 보고하고 이듬해 1월 중에 대통령 업무보고를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의 시국을 고려하면 내년 1월 예정된 각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 시기는 불투명하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는 위원장 주재로 이번 주에 간부 워크숍을 열고 내년도 업무계획을 논의하려고 했으나 다음 달로 미뤘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내년 1월 중에 각 부처에서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해야 하는데 지금 분위기로는 제대로 될지 걱정이 된다”고 우려했다.
기재부가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준비 중인 ‘2017년 경제정책방향’의 발표 시기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경우 주형환 장관 취임 후 매달 열기로 한 국내 주요 그룹 CEO와 간담회 추진 일정을 놓고 고민에 휩싸였다.
중앙부처가 흔들리면서 산하 공공기관장의 인사도 표류하고 있다. 전임 기관장의 임기가 만료돼 공석인 상태이거나 후임자가 선임되지 않은 곳이 20개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한국 경제의 대대적 체질 개선 차원에서 집권 2년 차에 내놓은 공공ㆍ노동ㆍ금융ㆍ교육 등 4대 부문 구조개혁도 추진동력을 잃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