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 향한 특검의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뇌물 공여자’로 결론을 내리자, 주요 그룹들은 숨을 죽인 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다음 수사 대상으로 꼽히는 SK, 롯데 등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등,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53개 대기업에 특검의 칼날이 전방위로 뻗어가는 모양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소환조사한 나흘 만인 16일 이 부회장에게 뇌물 공여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이 지난해 11월 20일 최순실 씨 등을 기소하면서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강요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낸 피해자라고 했으나, 특검은 40여 일 만에 ‘뇌물 공여 피의자’로 뒤바뀐 결론을 내렸다.
특검은 430억 원의 뇌물 공여를 이 부회장이 주도했고, 그에 따른 반사이익을 이 부회장이 봤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단,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대한승마협회장인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부문 사장 등은 불구속 수사하겠다고 했다. 이번 사건을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권 확대를 위한 이 부회장의 개인적 범죄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재계에선 ‘최순실 특검’이 ‘대기업 특검’으로 ‘본말전도(本末顚倒)’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인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를 뇌물죄로 엮기 위한 공권력의 힘이 기업들을 엉뚱한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특검의 수사가 기업 수사로 변질되고 있다는 판단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뤄지는 준조세 성격의 ‘기업 강제 기부 관행’을 먼저 혁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는 특검이 이날 대기업들이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774억 원을 뇌물로 단정하고 수사하겠다고 밝히면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검은 삼성 외의 다른 기업들에 대해서는 부정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 금액의 많고 적음 등에 따라 입건 범위는 최소화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는 죄질에 따라 선별적으로 처벌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다른 기업들과 함께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까지 뇌물로 몰아가는 것은 과잉수사”라며 “법원이 법과 원칙에 따라 이 부회장의 영장 발부 여부를 냉정하게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는 1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