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경쟁과 수익성 악화로 매년 폐업하는 주유소의 숫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최근 알뜰주유소의 가격 경쟁력을 강화해 석유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주유소 업계가 한숨을 짓고 있다.
최근 정부는 최상목 기획재정부 제1차관 주재로 개최한 ‘물가관계차관회의 겸 범정부 비상경제대응 TF 회의’에서 알뜰주유소의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고 석유시장의 경쟁을 촉진해 석유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설관리비용 지원 등으로 알뜰주유소를 더 확대해나갈 것이며, 기존 알뜰주유소간 협력 강화로 공동구매물량을 최대한 결집해 공급계약 단가 인하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23일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알뜰주유소가 도입된 시기인 2012년 전국에서 영업 중인 주유소 수는 1만2803개였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말 기준 1만2018개로 785개가 줄어들었다. 알뜰주유소 도입 후 매년 100~200여 개의 주유소가 문을 닫은 것이다. 반면, 석유공사, 도로공사, 농협 등이 운영하고 있는 알뜰주유소는 2012년 844개로 시작해 지난해 말 기준 1168개소로 늘어났다.
주유소 업계는 알뜰주유소 도입 후 더욱 심화된 가격 경쟁 때문에, 가격인하 여력이 없어 경영난에 처해 폐업수가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유소 마진이 지금도 적은데 여기서 마진을 줄이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기름값이 비싼 근본적 원인은 유류세 때문인데 정부가 업계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2월 3주차 기준 리터당 휘발유 소비자가격 1516.9원 중 세금이 884.3원(58%), 정유사가격이 524.7원(35%), 유통비용·마진 등이 108.0원(7%)의 비율을 기록했다. 경유 역시 세금이 50%, 정유사 가격이 41%, 유통비용·마진이 9% 비율을 차지했다. 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유통비용·마진 등에서 인건비, 카드수수료, 공과금 등을 제외하면 주유소의 마진은 1%대에 머문다.
또한 알뜰주유소는 약 5년이 경과하였음에도, 여전히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은 22일 알뜰주유소 운영 5주년을 기념해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서 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12년 알뜰주유소 도입 뒤 3년(2013~2015년)간 휘발유와 경유를 합쳐 총 6조3800억원의 소비자 가격인하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정유사 도매부문 가격인하 효과의 경우 휘발유는 리터당 25~48원, 경유는 리터당 4~23원으로 추정됐다. 소매부문에서 전체 주유소의 휘발유는 리터당 평균 67원, 경유는 평균 39원 인하시킨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는 처음 알뜰주유소가 시중 주유소보다 리터당 70~100원가량 저렴할 것이라는 목표치에도 미치지 못하며, 실제 소비자가 느끼는 알뜰주유소의 가격인하 효과도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홍우형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알뜰주유소 전환으로 인한 가격인하 효과는 리터당 약 20원 정도 였다”며 “알뜰주유소로의 전환이 어느 정도 완료된 시점인 2014년 중반 이후에 국제유가의 급락으로 인해 가격수준이 대폭 감소했는데 이를 알뜰주유소 도입으로 인한 가격인하효과로 과대 추정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국제유가가 오르긴 했지만, 과거 알뜰주유소가 도입될 당시의 고유가와 비교하면 저유가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유가가 오르더라도 과거처럼 크게 오를 가능성이 없어 알뜰주유소 효과가 크지 않을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상황이 악화된 주유소 업계는 현재 공정한 경쟁 여건 조성과 유류세 인하와 같은 실질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주유소협회는 주유소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유류세 구조를 홍보하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또 최근에는 도로공사가 고속도로 주유소의 운영 평가 과정에서 석유 판매가격과 매입가격 인하 항목에 대한 평가 비중을 매우 높게 책정해 고속도로 주유소의 기름값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주유소업계 생존권 보호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다양한 단체행동을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