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의 금리차에도 불구하고 엔화 약세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왜일까.
지난주 국제 외환시장에서는 미국의 3월 금리인상 관측이 강해지면서 달러에 매수세가, 엔화에는 매도세가 강하게 유입됐다. 그러나 일본 시장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 때문에 추가적인 엔화 약세가 진행되지 않는다며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일본은 수출기업들의 제품에 가격 경쟁력이 생겨, 정부가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도 엔화 약세를 밀고 있다.
시장에서 엔화가 매도되는 가장 큰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한 가지는 미국의 3월 금리인상 관측에 따른 미일 금리차 확대, 또 하나는 지난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의회 연설이다. 트럼프는 당시 연설에서 기존의 공격적인 태도를 바꿔 친시장적인 발언으로 시장으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이에 리스크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서 외환시장에서는 안전통화인 엔화가 팔렸다.
그러나 일본 쪽 시장 참가자들은 엔화 가치가 더 떨어져도 된다는 입장이다. 현재 일본과 미국 금리 차이를 감안하면 달러당 120엔까지도 허용된다는 것이다. 미즈호증권의 야마모토 마사후미 수석 통화전략가는 “달러·엔 환율이 120엔을 못뚫는 건 미국 정부의 보호주의 강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보호주의적인 태도를 배경으로 미국 행정부가 무역적자 감축을 위해 달러 약세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앞으로도 달러는 계속 내리막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일 발표한 무역정책보고서에서 미국에 불이익이 된다면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트럼프는 ‘공정무역’을 강조했다. 그는 “나는 자유(free) 무역을 강하게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공정한(fair) 무역이어야 한다. 오랫동안 공정 무역이 행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이는 무역 불균형 시정을 위해 중국과 일본 등 무역상대국에 ‘공정무역’을 요구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평가다.
사실 트럼프의 이같은 발언은 그의 의회 연설 닷새 전 정권의 실세로 불리는 스티브 배넌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백악관 수석 전략가인 배넌은 2월 23일 보수 정치단체의 연례 회의에서 “공정무역 국가로 미국을 다시 자리매김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배넌은 미 해군과 골드만삭스 등을 거쳤고, 백인우월주의 성향이 보수 뉴스 사이트 브라이트바트닷컴을 운영해온 인물이다. 작년 여름 트럼프 대선 진영에서 최고 책임자를 지내며 트럼프가 승리하는데 일등공신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와 각별한 사이임은 물론이다.
배넌은 백악관 수석 전략가로 취임한 뒤에도 트럼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영향력이 강한 남자로 주목됐다. 이슬람 7개국 국적자의 미국 입국을 한시 제한한 반 이민 행정명령도 배넌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미국을 다시 공정무역 국가로 올려놓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경제 민족주의’를 선언하며 중국과 일본을 통상 정책상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2일자 칼럼에서 배넌의 싸움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절서에 관한 것으로 미국 최초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한다고 우려했다. 신문은 미국이 이를 실천하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역시 장기적으로 달러 강세는 바람직하다고 말하면서도 단기적으로 달러 강세가 좋은 건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며 외환시장이 배넌발 엔고 그림자를 의식하면 달러 강세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불어 신문은 4월 시작되는 미일 경제 대화에서 미국 측이 경제 민족주의를 어느 정도 내세울 것인지가 달러·엔 환율의 향배를 점치는 데 중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