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 다리가 떠내려가지.”
비가 오는 날 동네 아이들의 은밀한 소망이었다. 그래야 며칠 학교에 가지 않을 수 있었다. 내 기억으로 섶다리는 딱 한 번 떴다. 며칠이나 쉬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다시 섶다리를 밟지 못하게 되었다. 새로 놓은 다리는 섶을 깔지 않고 멀리 강릉 비행장에서 얻어온 구멍이 뽕뽕 뚫린 철판을 깔았다. 어른들 말로는 강릉비행장에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자리의 활주로에 깔았던 철판이라고 했다.
섶다리 대신 깐 철판 다리가 신기하긴 했어도 예전 섶다리처럼 편하지 않았다. 섶다리는 그냥 땅을 밟고 다니는 기분이었는데, 새로 놓은 철다리는 구멍이 뽕뽕 뚫려 그 아래로 흐르는 물이 어질어질 우리 정신까지 빼앗곤 했다. 우리는 그 다리를 ‘뽕뽕다리’라고 불렀다.
철판 다리 위에서 신발을 잃은 건 우리 반 용철이었다. 비가 내리다 하늘이 맑으면 가장 먼저 마르는 것이 방앗간의 함석지붕과 뽕뽕다리였다. 다른 곳은 땅이 진 데도 뽕뽕다리는 햇볕 아래 반짝 뜨겁기까지 했다. 비가 많이 내렸다가 그친 날,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리를 건너다 용철이의 고무신이 뽕뽕다리 구멍 사이로 빠졌다.
“어이쿠, 내 신발…”
우리가 그 말을 들었을 때 용철이의 검정 고무신은 이미 다리 아래로 떨어져 종이배처럼 빠르게 물살에 휩싸였다. 비는 내리지 않아도 물은 다릿발 중간까지 차올라 빠르게 아래로 흘러갔다. 고무신도 물살만큼이나 빠르게 아래로 흘러가 버렸다. 우리는 용철이와 함께 물 위에 떠내려가는 신발을 따라 방죽까지 뛰어갔다. 고무신은 물속에 몸을 숨기기도 하고 떠오르기도 하면서 애간장을 녹였다.
우리는 아랫마을의 큰 보까지 가 용철이의 신발을 보았다. 그러나 보 아래로 작은 폭포처럼 떨어져 내리는 물과 함께 떨어진 신발은 다시 물 위로 솟아오르지 않았다. 해가 질 때까지 우리는 방죽을 왔다 갔다 하며 신발이 떨어진 보 밑을 살펴보기도 하고, 아래 방죽까지 내려가 보기도 했지만 한 번 눈에서 놓친 신발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엉엉, 이제 어떻게 하지? 나 집에 가면 혼날 텐데, 엉엉. 산 지도 얼마 안 되는 새 신발인데, 엉엉…”
신발을 잃었다고 용철이가 울고, 우는 용철이를 달래다 우리까지 따라 울었다. 좀체 자리를 뜨려 하지 않는 용철이를 달래 저녁 늦게 방죽을 따라 올라오던 길, 해 떨어진 대관령에서 밀려오는 노을은 또 왜 그렇게 곱기만 하던지. 어쩌면 그래서 더 서럽고 슬펐는지도 모른다.
그때 용철이가 잃어버린 고무신은 무사히 바다에 가 닿았을까. 그랬다면 고무신은 지금 어느 망망대해를 떠돌까. 우리의 몸은 이렇게 커지고 발도 이렇게 커졌는데.
그때의 소년들이 환갑이 되었다. 환갑 기념 모임으로 초등학교 동창들이 고향에서 만났다. 이제는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 옛날 선생님 얘기도 하고 용철이가 잃어버린 고무신 얘기도 했다. 돌아보면 우리 어린 날의 꽃과 나비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