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24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최순실 지원에 대해 “불법으로 지원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관행적으로 해왔던 후원활동의 일환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언론과의 간담회나 직원과의 대화도 아니고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질의에 대해 답하면서 나온 입장이니, 향후 이 사건과 관련한 주주의 이익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을 직접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연 이 말은 사실일까, 그리고 적절한 말일까?
일단 권오현 부회장의 발언을 다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불법으로 지원한 것은 없다”는 말은 절차상으로 적법하게 지원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최순실에 대한 지원의 집행과정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다는 것이다. 다만 그 용처에 있어 해석상의 차이가 있으니 이 부분은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기부금이나 후원금이 물의를 일으키지 않도록 절차를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얘기다.
우선 맞는 부분이다. 자금의 용처에 있어 이재용 부회장을 기소한 특검과 이재용 부회장과는 확실한 ‘해석상의 차이’를 지니고 있다. 이건 맞다. 특검이 보기에 삼성이 최순실(과 그 공모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공여한 433억원은 안정적인 고용승계 등을 위해 절대권력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제공한 뇌물이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 측의 입장은 이건 그냥 관행적인 기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틀린 부분은 이제부터다. 앞의 설명처럼 권오현 부회장이 인정하고 있듯, 433억원의 성격에 대해 해석상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권오현 부회장이 간과하고 있지만 이 해석상의 차이는 지원의 집행과정에 대한 법률적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약 이 433억원이 뇌물이었다면, 그 집행과정은 적법한 과정일 수가 없다. 433억원이 이재용 회장 혹은 다른 개인의 돈이 아니라 기업의 돈이기 때문에,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뇌물을 제공한, 횡령이다. 그렇다면 집행과정이 적법했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권오현 부회장은 자금의 용처와 자금의 집행과정이 절대적으로 분리된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로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그리고 이 돈이 기부금이라는 사실을 다툼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왜곡했다. 용처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가 있으므로 과정상의 적법성도 검토의 대상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만약 이 433억원이 이재용 부회장측의 주장처럼 기부금이라면 어떨까? 권오현 부회장의 말처럼 이는 관행적인 기업활동의 일부로 해석될 수 있을까?
이 돈이 기부금이라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부적절한 기부 때문에 삼성의 가치가 훼손되었고, 이 훼손분이 액수로 정확하게 환산되지 않았을 뿐 주주의 손해로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손해는 단순한 ‘물의’가 아니라 분명한 재산상의 피해다. 그렇다면 분쟁의 여지가 있다. 특히 권오현 부회장은 이번 건이 “이사회나 경영위원회 의결 사항은 아니었고, 감사위원회 보고사항도 아니었다”고 말했는데, 주주에게 손해를 끼칠 수도 있는 기부를 이사회나 경영위원회의 의결이 없이 집행했다니 그 의도가 더욱 궁금해진다. 의사결정을 할 당시에 이런 ‘물의’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못했기 때문에 본의가 아니라는 주장은, 이 기부로 인해 부적절한 누군가가 부당한 이익을 얻는 정황이 없을 때에나 합리적으로 납득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였고, 그래서 지금의 사태에 이른 것이다.
국민의 노후 보장 대책인 국민연금이 동원되었다는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대통령이 탄핵당한 초유의 사태에 연루된 기업에서, 주주에게 할 수 있는 발언이 “불법은 없었다”라는 것이다. 가장 높은 수준의 책임이 요구되는 시점에 나온 발언으로 보기엔, 답답하다. 삼성에게 국민은, 그리고 책임은 무엇인가?
고대권 코스리 미래사업본부장 accrea@kos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