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7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콘퍼런스홀에서는 ‘중국석학 초청강연’이라는 제목 아래 중국 상해 복단대학의 갈조광(葛兆光)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강의 주제는 ‘조선통신사를 통해서 본 동북아 3국’이었다. 갈 교수는 강의 내내 조선을 표현할 때 ‘이씨조선’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를 그리다: 이조조선 한문연행문을 읽고(想象異域:讀李朝朝鮮燕行文箚記’(2014)라는 저서도 있다.
‘이씨조선’ 혹은 ‘이조조선’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뼈아픈 말이다. 우리 국민들 대부분이 단지 ‘이씨가 세운 조선’이라는 의미로 비하하여 ‘이씨조선’이라고 불렀다고 알고 있는데, 일제가 부른 ‘이씨조선’이 단순히 그런 의미라면 그다지 비하한 표현도 아니다. 중국에서도 위진남북조 시대 유유(劉裕)가 세운 송나라와 당나라 이후 조광윤(趙匡胤)이 세운 송나라를 구별하기 위해 왕의 성씨를 따서 ‘유송(劉宋)’, ‘조송(趙宋)’으로 나누어 부르는 예가 있기 때문이다.
일제는 1910년 조선을 병탄한 이후, 조선총독부를 두어 조선을 다스리면서 이미 그들의 나라가 되어 버린 조선을 그 이전의 조선, 즉 1910년 이전의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이씨조선’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고선 대수롭지 않은 양 “이씨가 세운 조선이니 이씨조선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이씨조선’은 우리에게는 치욕스러운 말로,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온 중국의 석학은 시종일관 ‘이씨조선’이라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날의 그 강연장에 있었던 나는 갈 교수에게 질문지를 보내 ‘이씨조선’이라고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를 물었다. 갈 교수 대신 주최 측에서 답을 해 주었다. “미묘한 문제이니 질문하지 말자”고. 허허! 왜 우리 스스로 ‘미묘한 문제’로 규정하여 질문조차 안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