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찬 칼럼] 비합리적 국무총리의 장관 제청권 없애야

입력 2017-05-2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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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건설교통부 장관

새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는 북한 핵 문제, 일자리 창출, 경제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으므로 장관 등 정부 주요 보직 인사 개편을 시급히 단행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박근혜 정부 시절 장관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어색한 동거를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장관들이 모두 사임하면 국무회의를 개최할 수 없어 국정이 마비된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부총리 등은 선정되었으나 나머지 장관 선정과 국회 청문회 등의 절차를 감안하면 새 정부의 인사가 마무리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 왜 장관들을 빨리 임명하지 못하는가? 헌법 제87조에 의하면 국무위원(장관)은 국무총리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토록 되어 있다. 이 규정은 구속력이 없다는 헌법학계의 견해도 있으나 과거 모든 대통령이 형식적이나마 이 규정을 지켜왔다. 물러나는 국무총리에게 장관 제청을 부탁하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중심제이지만 대통령의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해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상당 부분 도입하였다. 헌법 제87조는 이와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 국무총리를 두고 임명 시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였고 국무위원 임명도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도록 하였다.

국무위원 임명 시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도록 한 헌법 87조 규정은 합리적인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헌법 제87조는 타당성도 없고 비현실적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는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국정을 책임지고 운영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대통령에게 국정을 책임지라고 하면서 장관 임명을 독자적으로 못하고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도록 한 것은 책임은 지우고 권한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국무총리는 국민이나 국회가 선출한 사람이 아니고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다. 국무총리의 천거는 참고할지언정 반드시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헌법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장관도 마음대로 임명하지 못하는 약한 대통령이다. 사실 국무총리는 국정에 대한 책임 의식이나 각 분야의 인재에 대한 정보가 대통령보다 떨어진다. 현재의 제도는 대통령이 인재를 널리 발굴하고 인사권을 남용하지 말라는 취지인데, 이미 대통령 인사권의 견제 장치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국무총리 임명 시 국회 동의는 필수이고, 장관 임명 시에도 국회 청문회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였다.

실제로는 국무총리의 장관 제청은 형식적이어서 대통령이 마음대로 장관을 임명한다. 임명받은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뜻을 거역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 헌법 규정을 지킨 이는 단 한 사람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논리적 타당성도 없고 지키지도 않는 헌법 규정을 만들어 쓸데없는 고생을 하는가? 이는 결국 준법정신만 해친다. 따라서 향후 개헌 시 고쳐야 한다. 차제에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장관, 차관 등 주요 공직자와 주요 공공기관장 등 국정 운영에 핵심적인 보직은 책임행정 차원에서 정무직으로 분류하여 현재와 같이 대통령이 자유롭게 임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을 방지하기 위해 차관보급 이하 공무원, 공기업 임원 등 정무직 외의 인사는 국무총리와 장관, 공공기관장에게 전적으로 일임해야 한다. 공직기강을 명분 삼아 중간 간부의 인사까지 청와대가 관여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아울러 공공기관의 공모제도 ‘무늬만 공모제’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핵심적인 보직은 임명제로 하고 나머지는 명실상부한 공모제를 해야 한다.

불합리한 제도를 만들어 놓고 이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국정효율을 떨어뜨리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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