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시론] 보수정당들 앞이 안 보인다

입력 2017-06-2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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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의원과 야당의원 어느 쪽이 더 할 만할까?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여당 의원의 힘과 이익이 훨씬 컸었다. 정권 전위대 또는 거수기 등의 대단히 모욕적인 별칭으로 체면이 손상되긴 했지만, 그것을 감내해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의 큰 보상이 따랐다. 집권자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시절이었다. 그 옷자락만 잡고 있어도 권세를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정치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권력 작용의 구조가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달라졌다. 집권자의 제도적인 영향력이 급감했고, 그 위력은 딱하다 할 정도로 약화됐다. 그러니 여당 의원으로서 누림직한 특권·특혜라고 할 만한 것 가운데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여당의 위상 추락은 박근혜 정부 때 특히 심했다. 대통령은 여당을 권력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하면서 보호막 역할은 과도하게 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 피곤하기만 한 여당이 된 것이다.

반면에 야당의 정부에 대한 영향력은 아주 커졌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덕분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의욕적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려 해도 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만사휴의(萬事休矣)이다. 과거엔 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고 있을 경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선진화법 이후엔 야당의 협조가 필수요건이 되었다. 야당 지배의 의정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치 지형이 이렇게 변한 만큼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 의원들은 이제야말로 국회의원이 된 기분을 만끽할 법하다. 인사청문회를 통해 존재감을 한껏 과시할 수 있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확충’을 위해서라며 국회에 찾아가서까지 ‘추가경정예산안’ 수용을 요청했지만, 야당은 도리질이다. 야당이 외면하면 대통령인들 어쩌겠는가.

그 점에 고무된 것인지 정권이야 떠내려 보냈거나 말았거나 보수정당 의원들은 별로 아쉬워하는 빛이 없다. 정말 안타깝다고 여긴다면 보수정치인 대통회 및 대결집 운동, 보수 단일 정당 재건운동을 벌일 만도 한데,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럴 기미조차 안 보인다. 단일화 시도는 시기상조라 하더라도 반성조차 기피하다니!

대선 직후엔 일말의 기대라도 있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예상 이상의 득표로 당 회생 가능성을 열어놨고,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젊은 층에 대한 호소력에서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당분간 재결합은 어렵더라도, 신뢰 회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음을 국민으로부터 인정받는다면 회생의 기회나마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말인데, 각성한 보수 정치 리더들이라면 소속 정당의 대표직을 차지하겠다고 험구(險口) 경쟁까지 벌일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당직에 관심을 둘 때냐, 중의를 모아 당내외의 훌륭한 인사 가운데 한 분을 추대해서 그분을 중심으로 당의 결집, 보수정당의 재건에 나서자!” 그런 사자후(獅子吼)가 당 안팎을 울렸어야 했다. 그런데 당세가 형편없이 위축된 데 대한 부끄러움도 모르는 듯이 당권 경쟁에 열을 올리는 모습들만 보여 왔다.

바른정당은 오늘, 그리고 자유한국당은 다음 달 3일 새 지도부를 구성한다. 당 대표 자리가 누구에게 갈 것인지는 이미 결정이 나다시피 했다고 들린다. 국민들도 대충 짐작하는 분위기이다. 당사자들은 벌써부터 득의만면(得意滿面)한 표정일 것도 같지만, 이들 두 정당의 내부 사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재된 갈등·분열 요인이 너무 많은 탓이다. 새로 당 대표가 될 사람 자신이 발화점 노릇을 하게 될 소지 또한 없지 않아 보인다.

삭풍이 몰아치는 광야에 서게 된 처지라면 모두 새롭고 튼튼한 집을 짓는 일에 나서야 옳다. 그런데 워낙 고생을 모르고 누리기만 해온 사람들이어서인가, 가만히 앉아서 누가 천막이라도 쳐 주길(옛날 박 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바라는 인상이다. 그런 정당으로 만족하겠다면 국민으로서야 어쩌겠는가. “그럼 그렇게 하시든가”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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