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쾨르버재단 초청연설을 통해 새 정부의 한반도 평화 구상을 밝혔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이나 특사 파견 등을 제안했던 것처럼 평화 체제 구축의 물꼬를 트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문재인판 ‘신(新)베를린 선언’을 통해 남북 대화 모드 속 악재로 부상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도발을 계기로, 강한 대북 제재 기조를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대화를 통한 평화적 북핵 해결’이라는 원칙을 지키고 대화의 끈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확인 했다. 또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는 한편, 항구적인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 평화협정 체결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문 대통령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남북간 대화 재개에 대한 북한의 호응을 촉구하면서 여건이 되면 언제 어디서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는 의사도 분명히 했다. 나아가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적 협력 확대와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자 ‘10ㆍ4 정상선언’ 10주년인 오는 10월 4일에 이산가족 상봉과 성묘 방문을 제안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압박했다.
여기에 문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으로 단절된 남북을 경제벨트로 새롭게 잇고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골자로 한 ‘한반도 신경제구상’ 로드맵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옛 베를린 시청에서 열린 연설에서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은 북핵 문제”라며 “특히 바로 이틀 전에 있었던 미사일 도발은 매우 실망스럽고 대단히 잘못된 선택이고 무모한 것”이라고 북한에 경고했다. 또 “무엇보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모처럼 대화의 길을 마련한 우리 정부로서는 더 깊은 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북한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않기를 바라며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며 “바로 지금이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고, 가장 좋은 시기”라며 북한의 결단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양국이 큰 방향에서 한반도 비핵하에 합의하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대화를 재개하려는 한국 정부의 구상을 지지한 만큼 평화프로세스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본여건이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날 한중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도 같은 공감대를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북한이 핵 도발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더욱 강한 제재와 압박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의지를, 북한이 매우 중대하고 긴급한 신호로 받아들일 것을 기대하고 촉구한다”며 북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강경한 대응 의지를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반도의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이끌기 위한 새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해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먼저 “우리가 추구하는 오직 평화”라면서 “남과 북이 함께 평화로운 한반도를 실현하고자 했던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북한의 붕괴나 흡수통일, 인위적인 통일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안보‧경제적 우려 해소, 북미관계 및 북일관계 개선 등 한반도와 동북아의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남북평화의 제도화 구현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안으로는 남북 합의의 법제화를, 북핵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으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또 “북핵문제가 진전되고 적절한 여건이 조성되면 한반도의 경제지도를 새롭게 그려 나가겠다”면서 “부산과 목포에서 출발한 열차가 평양과 북경으로, 러시아와 유럽으로 달리고, 끊겼던 남ㆍ북ㆍ러 가스관 연결 등 동북아 협력사업들도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정치적 교류협력 사업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분리해 일관성을 갖고 추진해 나갈 것”이라면서 “다양한 분야의 민간교류를 폭넓게 지원하는 한편, 북한 주민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함께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북한 주민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인도적인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이번 연설을 통해 한반도 평화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북한에 제안했다. 우선 문 대통령은 “올해는 ‘10.4 정상선언' 10주년이고, 또 10월 4일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이라면서 “민족적 의미가 있는 두 기념일이 겹치는 이 날에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개최한다면 남북이 기존 합의를 함께 존중하고 이행해 나가는 의미 있는 출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북한이 한 걸음 더 나갈 용의가 있다면,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 성묘 방문까지 포함할 것을 제안한다“며 만약 북한이 당장 준비가 어렵다면 우리측만이라도 북한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이나 성묘를 허용하고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북한을 향해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한 남북 간 접촉과 대화 재개를 요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처럼 당국자간 아무런 접촉이 없는 상황은 매우 위험하며 상황관리를 위한 접촉으로 시작해 의미있는 대화를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면서 “나아가 올바른 여건이 갖춰지고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전환시킬 계기가 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문 대통령은 북한에 “평창동계올림픽에 참석해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자”며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에 대해 IOC에서 협조를 약속한 만큼 북한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또 남북간 긴장을 완화하는 의미있는 계기를 만들자며 휴전협정 64주년이 되는 7월 27일을 기해 남북이 군사분계선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