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정의 인사이트] ‘부자증세’ 해야 한다면, 진짜 솔직해지자

입력 2017-07-2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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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차장

여당발(發) ‘부자 증세’론에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 정부는 5년간 100대 국정과제에 소요될 178조 원의 재원을 마련하고자 예상보다 빨리 증세 카드를 꺼내들었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흡연율을 낮추겠다’는 명분으로 추진했던 담뱃값 인상이 ‘서민 증세’ 논란을 불렀던 사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은 것일까. 조세 저항을 줄이고자 서민이 아닌 초(超)고소득층과 초(超)대기업을 콕 집어내는 ‘핀셋 부자 증세’ 전략을 들고 나왔다. 또 같은 해 ‘연말정산 파동’으로 우회 증세 역풍을 맞았던 정부는 이번엔 ‘직접 증세’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증세는 정권마다 시도됐지만, 정권의 힘을 약화시키는 ‘악재(惡材)’가 되곤 했다. 그래서 증세를 공론화하기는 더욱 쉽지 않았을 테다.

집권 초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었다지만, 내년 지방선거까지 앞둔 시점에서 세율을 올리는 직접 증세의 필요성을 터놓고 이야기한 ‘소신(所信)’은 높이 살 만하다.

실제 우리나라의 조세 부담률은 2015년 기준 18.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인 25.1%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어서 증세 여력도 충분하다. 복지사회 구현을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사실도 상식이다. ‘증세 없는 복지’와 같은 허황된 구호가 아닌 복지 실현을 위한 증세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바람직한 자세이다.

하지만 증세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부자 증세’로 정부가 더 거둘 수 있는 세금은 연 4조 원에 불과하다. 178조 원이 들어가는 일자리·복지 정책을 실행하려면 장기적으로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보편 증세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경유세나 근로소득세 면세자 축소 등을 통한 일반 증세가 불가피하다면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만이 아닌 서민과 중소기업도 충분히 증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0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증세 논의의 물꼬를 튼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과 김 장관의 증세 주장에 적극 동조한 것으로 알려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보편 증세론자들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증세를 본격화하기에 앞서 국민의 동의와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금을 낼 사람들을 설득해 주머니를 열게 하려면 국민적인 합의가 전제돼야 함은 기본이다. 벌써 야권은 ‘부자 증세’를 “포퓰리즘성 표적 증세”라고 규정지으며 여당이 ‘조세 정상화’·‘명예 과세’·‘사랑 과세’ 등으로 명명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비판 여론을 피해 가려는 꼼수”라고 날을 세우고 있다.

단순한 인기 영합주의(迎合主義)에 입각하지 않고, 증세의 필요성에 국민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며, 충분한 사회적인 공론화가 이뤄져야 민심의 역풍을 비켜갈 수 있다.

정부가 마련한 세법 개정안이 국민의 지지를 얻는다면 국회 통과를 위한 야당 설득에 명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증세의 불가피성을 설파함과 동시에 재정 당국이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지출을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만이 국민은 정부의 증세 정책에 자연스레 지지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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