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준비나 프로젝트 진행, 그리고 청년이 기업을 운영하는 경우도 그렇다. 그 일을 처음 해보는 상황이라면 맘처럼 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나의 야심, 주변의 기대는 더 이상 일을 끌어가는 데 동력이 되지 못한다.
시작을 응원했던 주변인이 근황을 묻는 일도 줄어든다. 마치 고 3 수험생에게 수능 준비를 잘하고 있냐고 묻지 못하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실패할 권리는 있다. 모든 실패에 의미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사고는 아니다. 다만 청년 기업의 실패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어야 하며, 실패를 의미 있게 하는 구조도 필요하다.
실패의 의미조차 개인이 찾지 못하느냐고 반문한다면 여러 기관에서 정책적으로 펼쳤던, 청년을 대상으로 했던 스타트업·창업·소셜벤처 공모전 그리고 지원사업에 대해서 상기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청년 창업 정책이 참여기관이나 금액의 증가 등 양적인 성장 말고 질적으로 성장해야 했던 시기가 언제였는지. 그들을 ‘수상자’로 만들었는지, ‘기업가’로 만들었는지. 시작만을 응원하는 것에서 더 발전된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 정책적인 뒷받침은 시작을 응원하는 것처럼, 끝낼 때에도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면 어떨까. 기업의 상황이 어려운데 이게 더 버티면 될 일인지, 아니면 사업적인 측면 내지 개인의 목표로 볼 때 여기서 그만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혹은 더 버티고 싶다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하다못해 청년기업 실패공모전이라도 해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구조’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던져 도전한 이들의 실패를 실패로 끝나게 두지 말자.
모든 실패가 경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패가 경험이 되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잘못된 점을 찾고 개선해야만 실패는 경험이 되고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
함께 실패한 관계는 더 단단해질 수 있다. ‘역시 동업은 하는 게 아니다’가 아니라, 같이 기업을 운영해왔던 동료들과 경영, 회계, 조직관리, 마케팅 등 세부 분야별 실패를 함께 따져 보게 하고 청년의 열정을 갈아넣어 운영해 왔던 기업이 폐업할 때에 각자 투자한 것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어야 한다.
누가 망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하겠느냐고? 상조보험도 처음엔 그랬었다. 누가 죽을 준비를 하고 싶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