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기업가(起業家)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졌지만, 창업률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최근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미국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새로 생긴 기업은 41만4000개였다. 이는 2014년에 비해서는 늘어난 것이지만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인 2006년보다는 줄어든 규모다. 2006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는 55만8000개의 기업이 설립됐다. 1980년 기준으로 미국 전체 기업을 놓고 봤을 때 설립된 지 1년 미만인 기업은 8개 기업 중 1개 꼴이었다. 그런데 2015년 이 비율은 12개 기업 중 1개로 급감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로버트 리탄 이코노미스트는 “경기는 회복되고 있는데 왜 창업자들이 늘지 않는지 질문을 던질 때”라고 진단했다.
원인으로 꼽히는 요인은 다양하다. 첫 번째 원인은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 출생자)의 고령화다. 한 때 창업을 주도했던 베이비붐 세대는 이제 50세가 넘는 장년층이 됐다. 자연스레 창업 열기도 가라앉았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대출 규제가 강화된 것도 창업을 위축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결정적 요인은 시장에서 대기업의 지배력이 막대해졌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이안 해서웨이 이코노미스트는 이 문제를 깊이 연구했는데 결과적으로 “시장이 공정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기존에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은 경쟁 업체들의 진출을 막는 방법을 찾아낸다”고 주장했다. 미 싱크탱크 루스벨트연구소의 마샬 스테인바움 이코노미스트도 “대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들이 시장 지배력을 키우면 통상적으로 새로운 사업체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최근 아마존의 제2본사 유치전에서도 대기업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존이 제2본사를 설립할 북미 도시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히자 미국에 있는 각 도시는 면세 혜택을 당근책으로 제시했다.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아마존 제2본사가 뉴어크 시에 설립되면 세금 70억 달러를 감면해 주겠다”고 밝혔다. 기업가 정신을 육성하는 비영리기관 카우프만 재단의 알노비오 모렉릭스 이코노미스트는 “각 도시가 아마존 유치를 위해 어떻게 면세 혜택을 제공할지를 서로 자랑하는 상황에 우리는 O.K라고 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아마존과 경쟁해야 하는 누구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두려움을 느낄 것”이라고 주장했다.
창업률이 저조한 현실은 미국 경제에 곳곳에 악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은 경제를 역동적으로 만드는 주인공이다. 동시에 일자리 창출을 주도하고, 이민자와 저 숙련 노동자들이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사다리로 여겨졌다. 창업 기업들이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고, 새로운 경영 접근성을 시도해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모렉릭스 이코노미스트는 “수십 년간 젊은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의 주역이었다”고 평가했다.
물론 1980년대 이후 크게 봤을 때 창업 기업 비중은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였다. 그런데 유독 최근에서야 문제가 되는 까닭은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첨단 기술 분야에서 창업 기업이 드물게 나타나고 있어서다. 1980~90년대 때에는 소매업 분야에서 창업율이 저조했다면 최근에는 경제 역동성을 의미하는 첨단 기술 기업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의 존 홀티웨인저 이코노미스트는 “2000년 이후 역동성이 많이 떨어졌다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며 “2000년 이후 특히 첨단 기술 분야에서 신생 기업이 많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위기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지난 7월에는 미국기업가정신연구소(CAE)가 설립됐다. 이 단체는 창업이 경제 전반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연구하고 창업률 향상을 꾀한다. CAE의 존 디어리 회장은 “모두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는지는 깨닫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자리 창출의 원동력인 ‘창업’이 30년째 하락하는 추세라면 이것은 국가 비상사태와 다름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