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중국 IT 산업의 떠오르는 별이었던 자웨팅 러에코 전 최고경영자(CEO)가 정부의 ‘회색 코뿔소(간과할 수 없는 명확한 위험)’ 응징 본보기로 전락하게 됐다. 자웨팅은 이번 주 중국 법원의 악성 채무자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자웨팅은 스마트폰과 전기자동차 스포츠 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애플과 테슬라 등에 도전장을 내미는 등 두드러진 활동을 해왔다. 이에 러에코는 ‘중국의 테슬라’‘중국의 애플’로 불리면서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웨팅은 회사의 재무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한 차입으로 문어발식 확장에 매달린 끝에 지난해부터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채권자들의 분노를 샀다.
중국 베이징 제3중급인민법원은 지난 11일 자웨이팅이 핑안증권에 상환해야 할 대출 원금과 이자, 각종 수수료 등 총 7200만 달러(약 784억 원)를 갚지 않았다며 ‘실신피집행인(失信被執行人)’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등록되면 비행기와 배, 고속철도 등의 1등석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고급 호텔과 골프장 사용이 금지되고 고액의 지출도 할 수 없다. 호화 주택을 매입하거나 건설하고 기업 운영에 필요하지 않은 자동차를 구입하거나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일 등도 제한받는다. 오직 생계와 업무에 필요한 비용만 인정받는다.
자웨팅은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거주하면서 자신이 최대 주주인 전기자동차 회사 패러데이퓨처 경영에 전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 소재 로펌 잉커의 후원여우 파트너는 “중국에서는 모든 일이 감시된다”며 “비행기 티켓을 사거나 세관을 통과할 때 여권 등 신분증을 제시해야 해 감시를 피할 수 없다”며 자웨팅의 중국 활동이 크게 제약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중국 상하이 법원은 지난 7월 자웨이팅의 자산 약 1억8200만 달러를 동결했으며 이후 자웨팅은 러에코 상장 자회사인 러스인터넷의 회장 겸 CEO에서 사임했다.
중국 경제가 성숙해지면서 관리들은 산더미처럼 쌓이는 부채를 우려하고 있으며 이런 혼란을 부추긴 지방정부와 국영기업, 자웨팅 등 재벌에게 철퇴를 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정부는 막대한 빚으로 해외에서 공격적으로 인수ㆍ합병(M&A)을 벌인 기업에 대해 규제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관영 언론매체들은 최근 이런 기업들을 ‘회색 코뿔소’로 칭하면서 경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러에코와 하이난항공그룹(HNA), 안방보험그룹 등이 대표적인 회색 코뿔소로 거론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과도한 차입에 따른 부채 리스크 억제를 위해 단속과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불안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지난 2011년의 약 180%에서 올해 2분기 255.9%까지 높아졌다. GDP 대비 비금융 기업 부채 비율은 2011년의 120%에서 최근 166.8%까지 올랐다가 2분기에는 163.4%로 소폭 낮아졌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중국 기업들의 해외 M&A 발표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12% 감소했다. 당국이 기업의 해외투자를 엄격히 제한한 영향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중국 금융안정 평가 보고서’에서 중국 금융시스템이 고위험대출과 그림자금융의 성장,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라는 3대 불안요소를 안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9월 중국이 사상 처음으로 지방정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겪을 수 있다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부채 급증 등 금융 리스크 해소를 위한 슈퍼 금융감독기구인 금융안정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