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경제의 최대 불안요소로 꼽히는 부채 문제 해소에 나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채와의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중앙정부가 부채 확산의 주범으로 꼽히는 지방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쉬중(徐忠) 연구국장은 지난 25일(현지시간) 현지 경제지 이차이닷컴에 기고한 글에서 정부가 미국 디트로이트처럼 지방정부 파산을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쉬중 국장은 중국의 부채 리스크를 완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지방정부가 파산하는 것을 포함해 좀 더 재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방정부 채권 발행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를 멈추고 실제 자금을 쓸 지방정부 스스로가 지방채 발행과 상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지방정부가 채권을 마구잡이로 발행할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 “금융시장이 지방채 발행 가능 여부와 가격 등을 면밀히 심사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쉬 국장은 “지방정부가 방만하게 부채를 늘리는 것은 중앙정부의 구제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다”며 “중국은 디트로이트 파산과 같은 사례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방정부 산하 국영기업이나 아예 지방정부 자체가 파산하는 것을 허용하면 문제가 생겨도 중앙정부가 구제할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맹목적인 기대를 깨뜨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 자동차 본고장 디트로이트는 지난 2013년 7월 180억 달러(약 19조3800억 원)로 사상 최대 규모 지방정부 파산을 선언했다.
중국의 감사원 격인 심계서도 지난 23일 보고서에서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부채를 대신 갚아줄 것이라는 ‘환상’을 깨뜨려야 한다”며 “금융기관들은 안정적인 영업현금흐름(Operating Cash Flow)이나 규정에 들어맞는 담보가 없는 지방정부 프로젝트에 자금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심계서와 인민은행 등 중앙정부 주요 부처의 경고가 지난주 중앙경제공작회의 이후 잇따라 나온 것에 주목하고 있다.
시진핑 등 중국 지도부는 지난 20일 폐막한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금융 리스크 해소와 빈곤퇴치, 환경오염 해결 등을 앞으로 3년간 경제 핵심과제로 지정했다. 시진핑 2기 정부 출범을 알린 지난 10월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 이후 진행된 첫 번째 경제정책 결정회의에서 부채 문제 해소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회의가 끝난 이후 발표된 성명은 “중국은 앞으로 3년간 금융 리스크 관리와 예방에 우선순위를 두고 주요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을 벌일 것”이라며 “금융과 실물경제, 부동산 부문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빚을 줄이기 위해 성장 둔화도 용인할 기세다. 양웨이민 중국 공산당 중앙재경영도소조 사무처 부총장은 지난 주말 열린 회의에서 “부채와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20년까지 연평균 6.3% 성장도 용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앙재경영도소조는 부처를 초월해 포괄적인 권한을 갖는 태스크포스로 시 주석이 조장이다. 양 부총장은 당시 발언에서 “작은 위험을 내버려두면 중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미치는 체계적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며 “경제 성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부채 비율이 계속 오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흥업은행의 루정웨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 주석은 금융안정 확인이라는 전제 하에서만 성장에 신경을 쓸 것이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주고 있다”며 “3년이라는 시간을 제시한 것도 시장이 좀 더 안정을 유지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진핑의 경제정책인 이른바 ‘시코노믹스(Xiconomics)’는 경제성장에 (부채 감축 등) 엄격한 전제조건을 내걸었다”며 “시 주석이 성장을 촉진하고자 부채에 대한 태도를 완화할 것으로 믿는다면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시 주석은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인민은행에 통화와 신용공급 밸브를 엄격히 통제하고 지방정부와 기업들이 부채를 줄일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