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요금제와 함께 현 정부의 통신비 인하 정책 중 하나였던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도 안갯속에 빠졌다. 보편요금제에 밀려 이해 당사자가 제대로 된 논의를 진행하지 못한 채 사업자 자율에 맡겨졌다. 더군다나 수십 년간 이통사가 단말기와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고착화된 시장구조를 바꾸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삼성전자는 자급제 단말기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3월 초 ‘갤럭시S9’으로 이통사용 단말기와 함께 자급제용 단말기(자급제폰)를 출시한다. 그동안 보급형 저가 단말기가 자급제로 출시된 경우가 있었지만, 프리미엄 단말기가 자급제폰으로 출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급제폰은 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단말기 제조사로부터 직접 살 수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디지털플라자, 하이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점은 물론 온라인에서도 이통 3사와 같은 날 자급제폰 갤럭시S9을 판매할 계획이다.
현재 통신 시장에선 이통사용 단말기에 약정을 맺지 않고 공기계만 구입할 경우 통상 10% 정도 가격이 비쌌다. 하지만 이번 갤럭시S9은 자급제폰과 이통사용 단말기 가격이 동일하게 책정될 방침이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통신비 인하 방안으로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주장했다. 통신비의 주범이 단말기 대금이기 때문에 통신서비스와 단말기 판매를 분리하면 통신비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기대했다.
지난해 11월 통신비 인하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학계, 산업계, 소비자 단체 등 범사회적 기구의 ‘가계통신비 정책 협의회’가 출범했다. 협의회는 통신 서비스와 휴대폰 판매를 분리하는 단말기완전자급제를 우선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완전자급제 도입이 통신 시장 구조를 크게 흔들 수 있는 정책인 만큼 중요한 의제로 선정된 것이다.
하지만 4차례에 걸친 논의에도 협의회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통 3사는 완전자급제에 대해 긍정적 신호를 보냈지만 오히려 정부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결국 완전자급제에 대한 협의회의 공식 입장은 ‘유보’인 채로 끝났다.
협의회 공동 대변인을 맡은 변정욱 국방대 교수와 전성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국장은 “협의회 위원 중 완전자급제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의견은 없었고 중립·유보·부정적 의견과 적극 반대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결국 협의회는 삼성전자와 이통사들에 강제력이 없는 자발적인 자급제 활성화 방안을 주문했다.
업계에선 현 상황에서 단말기완전자급제가 통신 시장에 연착륙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통사 관계자는 “국내 통신 유통망 구조상 대리점에서 제조사와 통신사로부터 단말기를 팔았을 때 리베이트로 받을 금액 중 일부를 단말기 구매자에게 환급해 주거나 사은품을 얹어줄 수 있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급제폰을 사는 것보다 통신사에서 구매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자급제폰이 소비자에게 선택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지적했다.
통상 통신사 유통점에서 단말기를 팔았을 때 판매원에게 장려금인 리베이트를 지급한다. 단말기 한 대를 판매하면 제품 종류와 판매 시기에 따라 리베이트 금액이 다르긴 하지만 보통 10만~50만 원까지 리베이트가 책정된다.
여기에다 가입자들이 직접 단말기를 구매할 경우 통신사가 운영하는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서는 통신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통사 관계자는 “자신이 쓰던 가입자 식별모듈(유심)을 자급제폰에 꽂으면 기본적인 문자, 전화, 데이터 통신만 가능하다”면서 “LTE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통신사 대리점에서 별도의 개통 절차를 거쳐야 하는 불편이 있기 때문에 자급제폰을 이용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