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에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한 동남아시아도 고령화의 역풍을 맞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동남아 국가들이 고령화로 인해 늘어나는 사회보장 비용과 인프라 투자에 충당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잇따라 증세에 나서고 있다고 20일 보도했다.
지난 19일 행 스위 키트 싱가포르 재무장관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부가세를 7%에서 9%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2007년에 5%이던 부가세율을 7%로 올린 후 약 10년 만에 2%를 더 올리는 것이다. 행 장관은 “세출 증가에 따른 증세 부담을 모든 세대가 나눌 필요가 있다”면서 국민에게 이해를 구했다.
싱가포르가 세금 인상을 결정한 것은 의료비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2013년 58억 싱가포르 달러(약 4조7178억 원)였던 의료·건강 관련 지출은 5년 사이 76% 증가했다. 올해 예산은 102억 싱가포르 달러이다.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의료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30년 싱가포르의 65세 이상 고령자 수는 현재의 두 배인 9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로 의료비 부담이 커지는 것은 태국도 마찬가지다. 올해 예산에서 의료·건강 관련 세출은 3035억 바트(약 10조3250억 원)로 전년 대비 약 3% 늘었다. 예산 비중은 약 10% 증가했다. 태국 정부는 지난해 9월 술이나 담배 등 건강에 해로운 품목의 부가세를 인상, 120억 바트의 세수 증가를 전망한다.
인도네시아도 지난달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을 평균 10% 인상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세금 인상을 통한 흡연 억제 효과와 동시에 의료비 감소를 기대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고속 성장과 동시에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동남아 국가의 사회보장비용이 가중됐다고 지적했다. 고령화는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기업 활동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쓸 재원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세수 확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증세는 쉽지 않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세제개편으로 법인세를 인하한 탓이다. 동남아 국가들이 법인세를 올리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돌아설 위험이 커진다. 싱가포르의 법인세율은 17%로 그동안 낮은 법인세율이 경쟁력이었으나 미국이 연방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내리면서 세율 격차가 줄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반도체 제조사 브로드컴은 세제개편을 언급하며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현 상황에서 싱가포르가 법인세를 올린다면 경쟁력의 원천이 흔들린다는 평가다. 이에 동남아 국가들이 세수가 가장 많은 법인세에 손을 대지 않고 부가세를 인상하는 경향이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