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증권시장(코스피)이 지난달 29일 사상 최고치인 2607.10을 터치한 뒤, 소강상태에 빠졌다. 기대 이하의 실적과 수급 난항에 이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까지 맞물리자, 증권가는 △실적 △수급 △금리라는 3가지 악재를 제시하며 당분간 상승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한 상장기업의 절반 이상이 시장 전망치(컨센서스)보다 낮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컨센서스를 10% 이상 밑도는 어닝쇼크를 낸 기업은 80개사가 넘는다.
증권사들은 올해 1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도 대폭 낮추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코스피 상장사들의 1분기 영업이익 합산 전망치를 49조6800억 원으로 집계했다. 1개월 전보다 4.39% 낮춰 잡은 숫자다. 이 기간 삼성전자의 컨센서스는 5.65%, 현대차는 10.64% 각각 하향 조정됐다.
전문가들은 코스피 랠리를 이끌던 실적 모멘텀의 소진을 우려하고 있다. 정재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실적 쇼크를 계기로 실적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는 것은 실적 모멘텀이 부진하다는 뜻”이라며 “지난해 주도 섹터였던 IT를 비롯해 경소비재, 경기방어 섹터에서 올해 컨센서스의 하향 조정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문제는 그간 지수를 지탱하던 수급이 수월치 않다는 점이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20일까지 코스피시장에서 1조4900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다. 특히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5거래일 동안 코스피를 연속 순매도하면서 한때 24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종목별로 살펴보면 외국인은 지난달에 이어 삼성전자를 8540억 원 덜어내며 글로벌 IT 업황 고점 논란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5분의 1에 육박하는 삼성전자의 현 주가는 230만 원대로 5개월 전인 지난해 9월 수준으로 후퇴했다.
같은 기간 기관은 외국인보다 더 많은 1조6070억 원어치를 내던졌다. 연휴가 끝난 후 2440선을 회복했던 코스피는 전날 기관의 ‘팔자’에 상승분을 반납한 2415.12로 마감했다.
미국이 계속해서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보내고 있는 점도 증시 변동성을 확대하는 요인이다. 인플레이션 압박이 강해지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금리인상이 빨라지거나 인상 횟수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것. 김효진 SK증권 연구원은 “미국 금리의 상승 움직임으로 인한 증시 변동성 확대를 대비해야 한다”면서 “이미 미국 증시가 하락폭의 70%가량을 되찾은 만큼, 향후 증시 상승세는 주춤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