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는 지난 10년간 돈이 넘쳐나는 세상을 살았다. 통장 잔액이 헛헛한 혹자(或者)에게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 수도 있으나 중앙은행들은 시중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2008년의 심각한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진 대불황(Great Recession)이 1930년대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합의하에 정책 금리를 낮추었고, 금융시장에서 채권을 대거 매입하는 비전통 방식의 양적 완화까지 진행했다.
그동안 실물경제의 회복은 미약했던 반면 주식, 부동산 등 각종 자산 가격은 크게 올랐다. 다우존스지수, 런던·홍콩 등지의 주택가격 상승이 대표적인 예이다. 얼마 전 이임한 재닛 옐런 연지준(聯支準) 의장이 미국 주택가격 상승을 우려하는 발언을 하며 불안감을 더했다. 실물경제 진작(振作)을 위해 풀린 유동성 물줄기가 실물경제보다는 자산시장으로 몰리며 나타나는 부작용은 지난 10년간 불안정한 부동산 시장을 보아온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제 사정이 크게 바뀌고 있다. 모든 G20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 회복세의 선두 주자 미국의 경우 2015년 이후 금리를 다섯 차례 인상했고 다음 달에도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 9월 2% 수준이던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최근 2.8%를 넘어 상승세를 이어가며 금융시장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경기 호황의 기대 때문에 금리가 오르는 것이면 덜 우려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를 둘러싼 최근 상황은 좀 복잡하다. 구인난이 거론될 정도로 고용 상황이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임금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동시에 최근 대규모 감세에 이어 의회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의 관심 분야 예산을 큰 폭으로 증액하기로 타협하면서 앞으로 재정 지출이 크게 늘 전망이다. 이는 재정 적자의 확대와 경기 확장적 충격을 의미한다.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시화할 여건이 만들어졌다는 우려가 높다. 우연히도 이런 시점에 연지준 의장이 교체되었다.
얼마 전까지 유동성 공급에 매진하는 모습에 익숙한 사람들은 잊어버렸을지 모르나 미국 중앙은행의 확고한 정책 우선순위는 물가안정이다. 2008년 이전까지 연지준 관련 뉴스의 상당 부분은 인플레이션 조짐에 대응하는 금리 인상 결정이었다. 다섯 번 인상되어도 아직 1% 초반인 과거 정책 금리는 3~4% 수준이 보통이었다.
지난 10년간 금리가 낮았을 뿐 아니라 물가도 매우 안정적이었다. 일본처럼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위험이 더 자주 언급되었다. 미국 중앙은행은 소비물가의 상승률을 2%로 안정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데, 2012년 이후 이 목표를 계속해서 하회했다. 그런데 작금의 경제가 안정적 성장기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임금 상승, 재정 정책 확장 등이 이어지면서 물가 상승의 목표치를 넘어서는 일이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인플레이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금리가 예상보다 더 빨리 오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통화정책의 체제가 10년 만에 전통방식으로 복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연지준 지도부는 어떻게 대응할까? 금융시장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달 초 보았듯이 소소한 뉴스에도 주식시장 투매가 발생할 수 있다. 그야말로 10년 만의 전환기에 변동성이 커질 텐데 지난 10년간 잔잔한 호수의 은파(銀波)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앞으로의 출렁거림은 광풍노도(狂風怒濤)처럼 느껴질 것이다.
경기와 금융시장의 부침(浮沈)이 본격화해 지난 10년을 좋았던 옛 시절로 아쉬워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