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경쟁 속에서 저의 버팀목은 오직 실적이었습니다. 제 능력을 숫자로 증명해 보이면 정정당당하게 승부할 수 있으니까요.”
증권가는 금융권에서도 유리천장이 견고한 곳이다. 얼핏 여성 직원의 비율이 높아 보이지만, ‘위’로 올라가는 여성은 손에 꼽힌다.
이명희 메리츠종금증권(이하 메리츠) 전무는 메리츠의 첫 여성 전무다. 30년 동안 영업점 최전선에서 고객을 만나고 그들의 수익을 설계한 이 전무는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 ‘숫자’라고 단언한다.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기 어렵지만, 그는 메리츠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면서 고객과 회사가 만족할 만큼 확실한 수익률을 내고 있다.
이 전무는 30년간 자신을 지탱한 숫자를 만들어 낸 비결로 ‘차별화’를 꼽았다. 그는 특히 기업 컨설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면밀한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고객과 신뢰를 쌓으면, 기업공개(IPO)에서 상장, 상장 후 자금조달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인 영업이 가능하다.
고객을 분석할 때는 자신의 역량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필요하다. 이 전무는 “본사가 주는 마케팅 자료만 들이미는 수준이라면 자산을 맡기기 위해 이명희를 찾아가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고객이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공들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손길이 닿는 자산의 약 70%는 주식운용자산이다. 보통 주식담보대출자산이나 금융자산 등 비주식운용자산의 비율을 더 많이 가져가는 관례와 상반된 행보다. “자본시장의 꽃이라는 주식을 너무 사랑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는 그는 “비주식운용자산은 누구나 다룰 수 있지만, 주식은 나의 역량이 수익률을 좌우한다는 점이 매력이자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무 역시 현장에서 뛰는 대신 관리 업무를 맡으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영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수치화한 역량으로 검증받는 길에서 멀어지면, 결국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그는 “영업이 아닌 관리직에서도 공정한 평가로 여성 임원이 나오는 기회가 더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