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한자에 담긴 성차별 성추행

입력 2018-03-1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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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미투(나도 당했다)’가 폭로된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인물 이름을 보면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거물의 실상은 괴물이었음이 드러난 보도를 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성희롱, 성폭행 피해자의 고백은 아프고 절절하다. 상처는 선명하다. 가해자들의 사과 아니 변명은 가볍다. 희미하다. 있었던 일을 잊거나, 아픈 줄도 모르거나, 강요를 합의로 착각하거나, 욕망 배설을 연애 감정으로 희석하거나. 성은(聖恩)을 베푼 것으로 착각, 몰지각하거나….

파렴치한 둔사(遁辭)보다 더 분노하게 하는 것은 시대착오 언동이다. 지금이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21세기가 맞는가. 한자(漢字)에 담긴 여성 수난사와 다를 게 없다. 과연 우리는 그 시대로부터 진화해 있는가, 멈춰 있는가. 한자에 담긴 여성 잔혹사를 톺아보자.

먼저 여자 여(女)다. 여자가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본떴다. 갑골문을 보지 않더라도 옆으로 서서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아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혹자는 묶인 채 꿇어앉은 전쟁포로 상형이라 본다. ‘여자=복종’으로 등식화했다는 점에서 통한다.

결혼 혼(婚)은 여자 여(女)와 저녁 혼(昏)으로 구성됐다. 왜 신랑은 신부를 황혼 무렵에 데리고 왔을까. 여자를 어두운 밤 약탈해 온 풍습의 잔영이라는 풀이가 유력하다. 부인 처(妻)는 머리채()를 위로 잡아 올린 여자(女)다. 위로 잡아 올린다는 해석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집갈 나이가 된 여자가 머리를 빗어 올려 비녀를 꽂아 성인식을 하는 모습으로 본다.(요즘 골프 라운딩을 처음 나가는 것을 머리 올린다고 표현하는 것도 이와 상관이 있다.) 또 하나는 남자가 머리채를 강제로 휘어잡아 탈취해 오는 모습으로 풀이한다. 첩(妾)은 더 원시적이다. 날카로운 도구를 뜻하는 신(辛)과 여자 여(女)에서 십(十)자가 생략된 것이다. 노비 문신을 새겨 도망치지 못하도록 강제한 여자다.

큰아들을 뜻하는 맹(孟) 자에도 끔찍한 잔혹담은 계속된다. 아들 자(子) 밑의 그릇 명(皿)은 국 삶는 그릇으로 볼 수 있다. 원시사회에서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전리품이었다. 탈취해 왔을 때 처음 낳은 자식은 약탈자의 자식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아버지가 누군지 불확실했던 당시, 처음 낳았던 아들을 그릇에 삶아 먹은 식인(食人) 풍습의 잔재(殘滓)다.

며느리가 돼서도 수난은 계속된다. 부(婦)는 계집 녀(女)+비 추(추)다. 한마디로 빗자루를 든 여자다. ‘며늘아기’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고되고 모진 가사노동, 비질, 즉 집안일이었다. 사마천의 ‘사기’ 고조본기에 보면 진나라 패현(沛縣)의 유지였던 여문(呂文)은 동네 건달 유방(劉邦)이 장래 제왕이 될 관상임을 일찍부터 알아본다. 유방에게 자신의 맏딸 여치(呂雉)와 결혼해줄 것을 청하며 “(내 딸이) 키질하고 비질하는 데 소용되게 하겠다”라고 말한다. 요즘 웹툰 ‘며느라기’가 며느리의 시집살이 어려움을 다뤄 인기인데 상통하지 않는가.

여자의 한 많은 일생은 오래된 여자, 즉 시어머니 고(姑)로 마감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세상사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마저”의 탄식을 매번 하며 각계 인물들이 ‘거물인지 괴물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권력-위력-완력을 바탕으로 한 이들의 공통점은 상습성, 전염성, 권력 도취성이다. 미투운동을 계기로 가해자의 개인적 인품을 탓하기보다 사전예방과 사후대책을 위한 조직문화 개선, 제도적 환경 조성을 서둘러야 한다.

약취와 탈취, 착취의 호색(好色)을 남성다움으로, 성희롱을 황은(皇恩)으로 착각하는 괴물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신시대의 인권 회복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더 이상 우리 후세에 부끄럽고 위험한 야만의 세상을 물려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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