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의 열기가 한풀 꺾인 중국 시장에서 일본산 화장품 즉, ‘J-뷰티’가 약진하고 있다.
세계에서 14번째로 큰 화장품 업체인 한국 아모레퍼시픽은 작년 4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76% 급감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4%, 32% 줄어들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배치 보복으로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겪은 탓이다. 아모레퍼시픽은 해외 매출 비중이 전체의 30%에 달한다.
그러나 중국의 사드 보복만으로 K뷰티의 부진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K-뷰티가 방심한 사이 J-뷰티가 그 자리를 꿰찼다고 최근 중국 온라인 매체 징데일리가 분석했다. 일본 화장품 업체들의 호실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세이도는 작년 한 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18% 증가했다. 매출액은 사상 최초로 1조 엔(약 9조9920억 원)을 돌파했다. 작년 1~6월 전체 매출 중 중국에서 발생한 매출 비중은 25%에 달했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중국의 소비자들은 과거보다 더 까다로워졌고, 품질에 관한 관심도 더 많아졌다. 중국 소비자들이 고품질로 인식된 일본 제품으로 눈길을 돌린 이유다. 맥킨지의 마티에 로체트 슈나이더 중국 전문 애널리스트는 “일본 화장품은 언제가 고품질을 자랑하며 중국인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었다”고 밝혔다. 상 잉 중국 미용박람회 사무총장은 “일본 업체들은 카테고리를 매우 세분화해 특색있는 제품을 내놓고 있다”며 “많은 일본 기업이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데 수십 년을 들이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이 일본 제품에 대한 품질을 보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리서치회사 CB인사이츠는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일본 화장품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화장품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탄탄하다. 일본 국제무역관리청에 따르면 일본은 전 세계에서 1인당 화장품 소비 규모가 가장 높다. 일본 화장품 업체들이 특색있는 기능성 제품을 내놓는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이미 J-뷰티는 자리를 잡고 있다. 일본의 게이샤에 영감을 받은 코스메틱 브랜드 탓차는 세계 최대 뷰티 편집숍인 세포라에 입점해 있다. CB인사이츠는 미국에서 일본 화장품 브랜드인 SK-II, DHC 같은 브랜드에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J-뷰티의 약진은 K뷰티의 마케팅 실책에서 비롯한 면도 있다. 징데일리는 한국의 뷰티 브랜드는 여성의 나이 듦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데 이러한 인식은 오히려 여성들에게 반감을 낳는다고 풀이했다. 런던에 거주하는 중국 여성 리타 첸(29) 씨는 “K뷰티 브랜드는 성형수술을 많이 한 여자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워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광고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일본의 대표 화장품 업체인 SK-II는 양성평등 의식을 높이는 캠페인을 벌여 큰 지지를 얻었다. 지난해 SK-II는 여성의 주체적인 선택을 응원하는 ‘체인지 데스’ 캠페인을 선보였는데 이는 사회가 나이로 여성을 재단하는 데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캠페인은 나이를 중시하는 중국에서 큰 화제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