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추월 방식 경기의 원조는 사이클이다. 사이클이나 빙상 모두 맨 앞 선수는 공기의 저항을 정면으로 받아 체력 소모가 심하다. 그래서 교대로 앞장을 서는데, 특히 손을 쓸 수 있는 빙상 팀추월에서는 체력이 달린 선수 뒤로 가서 밀어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정복과 승리를 지고(至高)의 가치로 삼았던 고대올림픽과 달리 참여와 인류애를 강조한 근대올림픽 정신에 가장 부합한 종목이 아닐까 한다. 올림픽 모토 중 하나인 ‘더 빨리’는 최소한 팀추월 경기에서만은 ‘함께 더 빨리’여야 할 것 같다.
구약성서에는 야곱이 쌍둥이 형을 속인 후 복수를 당할까 봐 외갓집으로 피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외가 마을에 도착했는데 우물가에 있는 목자들이 양들에게 물을 먹이지 않고 뒤에 오는 목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며 의아해했다. 경쟁적으로 살아왔던 야곱으로서는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물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치관에 맞았을 것이다.
그런데 목자들은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고 도착하지 않은 형제들과 양들이 있으니 모두 도착한 후에 우물 덮개를 열어 함께 마시는 것이 자기네 전통이라며 야곱의 충고를 거절한다.
야곱의 생각은 매우 합리적이다. 선입선출(先入先出), 승자독식과 같은 경제경영 이론이나 지식재산권의 인센티브 이론과도 맞닿는다. “부지런히 일을 마치고 먼저 우물에 도착해도 남보다 먼저 물을 마실 수 없다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몇 년 전 표어는 ‘The First & The Best’였다. 대학이 교육과 연구에서 첫째와 최고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대학공동체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는 학생, 가정 형편이 넉넉하거나 그렇지 못한 학생, 청소노동자나 경비원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 또는 파견 근로자도 있다. 그나마 노동법 적용에서 일부 배제되는 비정규직 강사들도 있다.
최근 여러 대학에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의 근로조건을 두고 심한 갈등이 일고 있다. 특정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대학이 장기간 방치해두는 것은 대단히 교육적이지 못하다. 다행히 필자의 대학은 최근 해결했지만 경제적, 법적으로 약한 지위에 있는 이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제일(the first)이 되면 다일까? 가장 뒤에 있는 이들(the last)과 함께 들어오지 않는다면 대학평가 순위에서 1등을 한들 그것이 진정한 1등이 될 수 있는 걸까?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대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자 마라톤 35km 지점에서 1등으로 달리던 선수가 물병을 집으려다 뒤따르는 선수에 걸려 넘어졌다. 2등 선수에겐 치고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그 선수는 넘어진 선수가 일어나 제 페이스를 찾을 때까지 천천히 달렸고 뒤따르는 3등 선수도 이에 보조를 맞췄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2등으로 들어온 선수는 넘어진 선수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요즘 사회는 틈만 나면 앞으로 치고 나가고, 넘어진 사람이 있으면 내 순위가 올라가는 쇼트트랙 경기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러나 끝에 있는 사람(the last), 한계상황에 내몰린 사람이 행복해야 모두가 진정 행복할 수 있다. 팀추월 경기가 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