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동남아시아 금융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착화된 국내 금융 시장과 달리 높은 성장 잠재력이 부각되자, 공격적인 인수합병(M&A)과 합작사 설립 등 현지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달 21일부터 23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베트남을 찾아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금융분야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이달 초 인도네시아 방문에선 인도네시아 ‘리스크 관리자격 시험’을 국내에 도입하기로 하는 등 성과를 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동남아 국가는 제조업 중심의 경제성장 속도는 빠르지만 금융산업 성장세는 더딘 편”이라며 “동남아 지역에서 한국 금융사들의 성장 가능성이 높게 전망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트 차이나, 동남아가 뜬다… 한국금융 ‘M&A 바람’ = 신한금융은 6일 주력 계열사인 신한은행과 신한카드를 통해 인도네시아 현지 소비자금융회사인 PT BFI 파이낸스 인도네시아 지분 매각 예비입찰에 참여했다. 지난해 말에는 베트남 현지 ANZ 은행의 소매금융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이에 베트남 진출 24년 만에 HSBC은행을 제치고 외국계 은행 1위(자산, 지점 수 기준)에 올라섰다. 자체 역량 강화와 M&A 경영전략을 동시에 가동한 결과다.
이처럼 최근 은행권의 동남아시장 진출은 현지에서 단계별(사무소→지점→현지법인)로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상품성이 있는 매물을 직접 M&A하는 방식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KB금융도 동남아지역 금융회사 M&A나 합작회사 설립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자체 네트워크 확대만으로는 진출 가속화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법인이 개설된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는 마이크로파이낸스 인수가 유력하며 아직 네트워크가 없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도 은행 인수를 통한 진출을 꾀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현재 인도와 동남아 한 국가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 등 여신전문업체 두 곳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가 완료되면 500개의 해외 네트워크가 구축된다. 우리은행은 현재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은 301개의 해외 영업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이 중 238개 점포가 동남아에 집중돼 있다.
◇콧대 높아지는 아세안, ‘맨땅에 헤딩’ 우려도 공존 = 한국 금융사들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진입 요건을 강화하는 등 ‘콧대’가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특히 최근 들어 강화되고 있는 최소 자본금 요건과 외국인의 지분율 제한은 금융회사의 동남아 진출 의지를 꺾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인도네시아의 최소 자본금 요건은 약 3000억 원으로 높아졌다. 해당 국가의 경제·금융 활동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자본규모 요건이 지나치게 높다는 평가다.
또한 금융시장 구조가 후진적인 탓에 곳곳에 예상치 못한 암초가 존재하는 것도 약점이다. 제대로 영업을 하지 않고 법인만 살아남은 곳들도 많아, 잠재 부실 규모에 대한 우려로 선뜻 나서지는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베트남 금융시장의 경우 공식적으로 부실채권(NPL) 규모가 8% 수준으로 알려졌지만, 국내 은행들은10%대가 넘어갈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며 “부실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지점이나 법인설립을 통한 현지화 전략이 아직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