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7일 외부감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진회계법인 감사팀 매니저 배모(48) 전 이사 등 전현직 임직원 3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 6개월~2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가담 정도가 낮은 파트너 엄모(48) 상무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양벌규정으로 기소된 법인에게는 벌금 7500만 원이 확정됐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외부감사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회계업계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범행이 충분히 예방 가능한 것이었는데, 회계법인이 감시는 커녕 조직적으로 범행을 도운 탓에 손실을 키웠다는 것이다. 안진 측 변호인은 회계사들이 의도적으로 비리를 덮은게 아니라 '인식있는 과실'에 불과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회계법인이 처벌받은 사례는 총 3건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벌금 1000만 원~3000만 원 수준이다.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대우조선해양 수사에 착수하면서 기존에 알려진 '분식회계'보다는 '회계사기'라고 정의했다. 고의성을 강조한 것이다. 검찰이 파악한 대우조선해양 사기대출 규모는 3조 원대, 분식회계 규모는 4조 원대다. 안진이 '적정의견'으로 표시한 2013, 2014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법원은 검찰 측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 봤다.
확정된 형사판결은 민사소송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와 1000여명의 개인투자자들의 민사소송은 진행형이다. 손해액 산정을 위한 감정 문제 등이 남아있어 아직 1심 결론이 나온 사건이 없다. 현재 분식이 없었더라면 형성됐을 정상주가를 놓고 다투고 있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형사사건에서 분식회계가 인정된 2013, 2014년 회계연도 부분을 민사에서 특별히 다투지 않아도 된다. 단체소송을 대리하는 한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책임 비율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해 안으로는 1심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2001년 미국의 '엔론(Enron) 사태'처럼 분식회계를 눈감아준 회계법인을 완전히 업무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국내 회계법인 수가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진은 지난해 금융위원회 업무정지 징계를 받은 뒤 서울회생법원 조사위원 후보에서 배제됐지만 올해부터 다시 사건을 배정받고 있다. 또 다음달부터 신규감사 업무도 수임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