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결혼의 계절이다. 결혼이 확정되면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예물을 보내는데 이를 ‘납폐(納幣)’라고 한다. 각 글자는 ‘들일 납’, ‘비단 폐, 예물 폐’라고 훈독한다. 신부의 집에 ‘예물을 들여놓는다’는 의미이다. 예물을 네모지게 만든 나무 상자인 ‘함(函)’에 넣어 보냈으므로 ‘납폐(納幣)’를 속칭 ‘함 들여보냄’이라고도 하는데, 이때에 함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을 ‘함진아비’라고 불렀다.
옛날에는 신랑 측 집사가 이 역할을 했으나 머슴이나 집사가 없어지자, 1970~2000년대에는 신랑의 친구들이 이 함진아비 역할을 하면서 적잖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부 집 근처에 도착한 함진아비와 신랑의 친구들은 거푸 “함 사세요!”라는 말만 외칠 뿐 일부러 들어가지 않고, 신부 측 혼주를 향해 술상을 차려 오라 하거나 ‘함값’을 달라면서 익살을 부려 결혼 축하 분위기도 띄우고 실지로 적당 정도의 돈을 받아서 친구 결혼식 덕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우정을 다지기도 했다.
물론, 지나친 장난과 과도한 돈을 요구함으로써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때 함에 반드시 넣어 보내는 신랑 측 혼주의 편지를 일러 ‘혼서지’라고 한다. 사실은 ‘지(紙:종이)’를 빼고 ‘혼서(婚書:혼인 편지)’라고만 해야 더 정확한 말이다. 이제는 함진아비의 풍속도 거의 다 사라지고 비싼 예물을 보내는 일에만 신경을 쓰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그래도 전통을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는지 함에 혼서지를 넣어 보내는 일은 더러 이어지고 있다. 필자에게 혼서지를 써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종종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혼서지가 온통 한자이다 보니 그 뜻을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성스러운 결혼식에 예물과 함께 보내는 편지라면 그 뜻을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2회에 걸쳐 혼서의 내용을 풀이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