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케이가 지금까지 실적을 발표한 257개 기업의 성적을 토대로 예측한 결과 일본 비금융 상장사의 지난해 총 순이익은 전년보다 30% 증가한 28조7800억 엔(약 281조5757억 원)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일본 상장사의 순이익이 사상 최대 금액을 달성한 것이다. 동시에 지난 5년간 순이익은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 닛케이는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 이렇게 순익이 급증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진단했다.
일본 기업의 순이익을 끌어올린 가장 거시적인 요인은 세계 경제 회복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작년 말 대규모 세제개편을 단행했고 이에 따라 미국 기업들은 1분기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가량 뛰었다. 이 같은 미국발 경기 회복에 일본 기업들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이 2014년 이후로 해외 M&A에 들이부은 자금은 43조 엔에 달한다. 이 중 대부분의 M&A가 신흥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 발판이 됐다. 대표적인 업체가 소프트뱅크다. 소프트뱅크는 작년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등과 함께 917억 달러 규모의 비전펀드를 출범했고, 비전펀드를 통해 IT 기업들의 돈줄을 쥐게 됐다.
적자 사업을 버리고 선택과 집중을 한 점도 순이익 증가에 도움이 됐다. 2017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에 20년 만의 최대 영업이익을 낸 소니가 대표적인 예다. 소니는 영업이익이 199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고, 순이익도 전년 대비 6배 이상 늘어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소니는 적자를 냈던 카메라, PC 사업 등을 구조 조정했고, 스마트폰과 태블릿PC용 이미지센서 분야에 집중했다.
일본의 신생 기업들도 순이익 증가에 큰 지분을 차지했다. 2000년 이후 기업공개(IPO)에 나선 일본 기업들은 지난 분기에 1조6000억 엔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일본 패션 전자상거래 사이트 ‘조조타운’을 운영하는 스타트투데이는 10년 전에 기록한 규모의 20배에 달하는 210억 엔의 순이익을 냈다. 의료 정보 제공 업체 M3은 2004년 기업공개(IPO)에 나선 뒤로 순이익이 40배 증가했다. 작년에 일본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은 거의 100개에 달할 정도로 적극적인 IPO가 일어났다. 이는 2009년 당시 IPO에 나선 기업이 19개인 것과 대조된다.
그러나 엔화 강세와 원자재 가격 상승, 아베노믹스 지속 여부 불확실 등이 위험 요인으로 남아있어 올해 내내 실적 호조를 기록할지는 미지수다. 블룸버그통신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지지율 하락으로 그가 주도한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른다는 점이 문제라고 분석했다. 아베 총리는 양적 완화, 재정확대, 구조개혁이라는 ‘세 개의 화살’을 아베노믹스의 핵심 정책으로 내걸었다. 아베노믹스 이후 기업들의 실적 호조와 주가 상승이 이어졌다. 양적 완화와 재정확대로 인한 엔저로 수출 대기업은 호황을 누렸다.
최근 아베 내각은 모리토모학원 특혜 의혹과 공문서 조작, 재무성 차관 성희롱 등으로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다.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3연임 가도에 적신호가 깜빡이는 이유다. 문제는 아베를 대체할 총리감으로 거론되는 자민당의 고이즈미 신지로, 이시바 시게루, 기시다 후미오 등이 ‘아베노믹스’와 같은 강력한 경제 정책을 내걸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일본은 임금과 소비의 선순환을 위해 경제 활성화 드라이브를 거는 데 앞으로도 몇 년 더 투자해야 한다”며 “거론되는 후보들은 경제 이슈에 집중하지 않을 인물들”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니혼대학교의 이와이 도모아키 정치학 교수는 “기업인들은 아베의 연임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며 “아베 총리는 어떻게 해서든 9월 이전에 지지율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