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여론이 공론이 되려면

입력 2018-05-2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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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여론 만능, 여론 전성시대다. 요즘 여론은 주로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가리킨다. 이를 통해 하루아침에 스타가 탄생하는가 하면 멀쩡한 사람이 생매장되기도 한다. 인터넷 실검 단어로 민심의 향방을 유추해볼 수도 있다. 인민재판보다 무서운 게 인터넷 평판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옛날에도 여론의 힘은 막중했고, 새겨듣고 톺아봐야 할 의사결정의 참고 지표였다. 권력자에게 여론은 조심스럽고 두려운 시대의 미래 권력이었다. 권력을 창출하기도, 전복하기도 하는 ‘세력’이었다.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또한 배를 뒤집기도 한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夫水所以載舟 亦所以覆舟] ‘공자가어’에 나오는 이 구절은 엄중한 여론관을 반영한다.

긍정적 기원이든, 부정적 저주든 결집된 의견은 가공할 힘을 발휘한다. 바람[風]이 누우면 따라 눕고, 바람이 일어서면 따라 일어나 한 박자 늦은 것처럼 보이는 민초이지만 이들의 절실한 바람[願]이야말로 시대 변화의 결정적 추동력이었다.

여론은 한자로 輿論이다. 더불 여(與)가 아닌 수레 여(輿)를 쓰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본의 한학자 도도 아키야스(藤堂明保)는 “사람이나 물건을 싣고 짊어져 운반하는 기구에 ‘모두의’라는 의미가 더해져, 그 이후 ‘세간 사람들의 의견·생각’을 가리키는 ‘여론’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풀이한다. 수레, 즉 플랫폼에 대중의 의견이 실리고 모일 때 비로소 세론(世論)이 된다는 뜻이 아닐까 풀이해본다.

여론은 다중(多衆)의 중구난방을 모아놓은 것 이상의 의미다. 단지 더불기만 하면 ‘날것’이다. 플랫폼에 실려 다양한 시각과 관점이 교차, 수렴되고 통합되고 구르는 과정을 거쳐야 공론(公論)으로 숙성된다. 미국의 경영 칼럼니스트 제임스 서로위키는 “대중의 지혜가 전문가나 현자보다 뛰어나다”고 말한다. 단 집단지성을 발휘하기 위해선 다양성, 독립성, 분산성, 통합의 네 가지 조건이 요구된다. 우선 여러 관점이 있어야 한다(다양성). 개개인이 각각 새 정보를 활용해 의견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독립성). 또 개인의 개별적 지식에 의존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분산성). 이외에 개인의 판단을 집단적 결정으로 전환하는 메커니즘, 다시 말해 통합시스템이 그것이다.

최근 SNS 여론에서 빚어지는 부작용 논란을 보면 안타깝다. ‘을의 반격’은커녕 을을 공격해 엉뚱한 자영업자를 폐업 위기에 처하게 하고 애꿎은 소시민을 자살 위기까지 몰고 간다. 의도적으로 정보를 왜곡하고 댓글 조작을 통해 여론 세몰이를 한다. 그렇게 될 때 여론은 고삐 풀린 망나니가 돼 집단 광기를 휘두르게 되기 십상이다. 동조화에 휩쓸리면 누군가에게 휘둘려 이용당하기 쉽다. 공감과 동의 개수의 양적 지표만이 판단 근거가 되고, 동조적 댓글만이 주장의 논거가 될 때 집단지성의 우성은 사라지고 집단극화의 열성이 두드러지게 된다.

드루킹이 여론 조작에 사용했다는 동일 작업 반복 자동화 프로그램 이름이 ‘매크로’라는 것을 들으니 등골이 서늘하다. 거대한 매크로 사회에서 마이크로하게 정보를 살피지 않고 무심코 동의나 공감을 표했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여론 왜곡의 호구로 이용당할 것 같다는 우려에서다. 차제에 ‘좋아요’, ‘동의’, ‘공유’의 위력을 쉽게 생각하지는 않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매크로한 양적 사회일수록 눈 똑바로 뜨고 사실 체크와 주장 배경을 검증하는 마이크로한 질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건전한 여론 형성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시민 윤리다.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한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마을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고, 나쁘다고 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마을 사람 중 어진 사람이 좋아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이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 好之 其不善者 惡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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