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의 경쟁 상대, 다시 말해 내수 시장 경쟁이 이렇듯 다각화하고 있지만, 내수 시장은 좀처럼 활짝 피어나지 않고 있다. 최근 한바탕 논란을 불러일으킨 ‘최저임금 인상 효과’도 결국은 소득을 늘리고 일자리를 늘려 소비를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직까지 경제지표로는 민간소비가 둔화된다는 수치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일반 국민들이 체감하기로는 요즘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내수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지는 않다. 유가가 오르고 농수축산물과 외식 물가가 줄줄이 인상되면서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줄어든다. 자영업자들은 임대료 급등, 소비 침체, 1인 가구 증가 등에 최저임금 인상 부담으로 폐업하는 점포 수가 창업하는 점포 수를 훨씬 웃도는 상황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최근 소비 패턴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작년 해외 소비(거주자의 국외소비지출) 규모는 31조9370억 원으로,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70년 이후 처음으로 30조 원(한국은행 집계)을 돌파했다. 우리나라 가계의 소비지출이 연 710조 원 규모인 점을 감안하면 가계 소비의 4% 이상이 해외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해외 소비는 2011~2016년 연평균 증가율이 11.7%에 이르는데, 같은 기간 국내 소비는 연평균 1~2%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해외 소비 증가는 짐작하는 대로 해외 여행 급증이 가장 큰 원인이다. 내국인 출국자 수는 매년 꾸준히 늘어나 올해 사상 처음으로 300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니 해외 여행 증가는 되돌릴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이제 곧 시작되는 여름휴가 시즌에도 수 많은 인파가 인천공항을 메울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에다 해외에서 직접 제품을 구매하는 해외 직구도 매년 20~30%씩 늘면서 해외 상품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관세청이 집계한 지난해 우리나라 해외 직구 규모는 21억1000만 달러(2조2000억 원)로 처음으로 2조 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직구 품목도 종전의 명품 패션이나 프리미엄 가전, 건강기능식품 위주에서 최근엔 샴푸·린스, 보디클렌저, 세제 등 생활용품으로 옮겨가고 있다. 직구 전문업체들은 합리적인 비용으로 높은 심리적인 만족도를 자랑하는 가성비·가심비 우수 상품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최근 국내 생활용품들이 잦은 ‘케미포비아’를 유발하면서 선진국 생활용품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진 듯하다.
전문가들은 서비스업 경쟁력을 강화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을 국내 경기 개선과 고용 확대로 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현 정부가 해외 여행, 해외 면세점, 해외 직구에까지 발을 넓히는 소비자들을 국내로 되돌려 내수를 진작할 만한 정책 카드를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유통 업태 소비 흐름이 백화점, 대형마트 위주에서 쇼핑과 엔터테인먼트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쇼핑몰, 교외 아웃렛 등으로 옮아가면서 ‘몰링족’, ‘몰세권’ 등의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런 소비자 니즈는 외면한 채 골목상권과의 상생만 내세우며 유통 영업 규제를 대형마트에 이어 쇼핑몰과 아웃렛 등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골목상권 상생에 묶여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도 육성이 어렵다”며 “그러는 동안 소비자들은 점점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걱정한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주말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만남이 주목된다. 정 부회장이 복합쇼핑몰 영업 제한을 포함해 신규 출점 및 신사업 투자 관련 불확실성을 제거해 달라고 건의하자, 김 부총리가 “고용을 창출하는 투자에 대해서는 규제 완화 등 여러 정책 수단을 패키지로 추진하겠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패싱’ 논란에 시달리는 김 부총리의 이날 답변이 실제로 내수 소비 확대에 도움이 되는 정책으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