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180조 원 규모의 역대급 투자계획 발표는 업계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금액이다. 당초 재계와 산업계 등에서는 삼성이 투자 규모가 100조~14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자신감이 묻어난 결정이자 총수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8일 삼성은 3년간 180조 원 규모의 투자와 4만 명 신규채용을 단행한다고 밝혔다. 특히 국내에는 연평균 43조 원, 총 130조 원이 투자된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만 약 70만 명에 달하는 직간접적 고용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단일 그룹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고용 계획이다.
삼성이 대규모 투자계획을 단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부회장의 자신감과 공격적인 신성장 사업 확대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뒤 공식일정은 자제해 왔다. 핵심 사업부문에 대한 업무 보고를 시작으로 3월부터 해외 출장길에 나섰다. 유럽·캐나다에서는 AI(인공지능) 관련 시설을 방문했고, 중국에서는 전기차·스마트폰 업체 대표를 만났다. 일본에서는 자동차 부품업체 대표들을 만났다.
이 부회장의 이런 행보는 삼성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는 4대 산업과 연관되어 있다. 삼성은 이번 투자 발표를 통해 AI·5G·바이오·전장부품 등 4대 미래 성장사업에 약 25조 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해외 출장 역시 4대 산업 확대의 연장선에 있었다. 신성장동력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이 부회장의 자신감에서 이번 대규모 투자가 계획됐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이 석방 후 공식 석상에 나타난 것은 딱 두 번. 인도 현지 신공장 준공식에서 인도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것과 이달 경기도 평택캠퍼스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것이 전부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삼성에 경제살리기 동참을 요청했고, 삼성도 화답했다.
그러나 일각에서 ‘기업 팔 비틀기’ 논란이 불거졌고, 이를 의식한 듯 삼성은 김 부총리와의 만남에서 발표하려던 투자 계획을 미루기도 했다. 또 대법원 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 부회장과 정부의 만남이 불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부담스러운 상황에서도 삼성이 예상을 뛰어넘는 투자계획을 발표한 것은 이 부회장의 신뢰회복 의지가 담겨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국민신뢰 회복 방안을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번 발표에도 이런 구상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바닥까지 떨어져 버린 기업인 이재용의 신뢰를 어떻게 되찾을지 생각하면 막막하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