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는 같은 날 국회에서 “상황은 같이 보고 있는 것이고 단지 기대가 섞여 있는 경우(장 실장)와 냉정하게 보는 것(김 부총리)의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그런 것을 엇박자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둔한다고 한 말이지만 두 사람의 본질적 차이와, 경제정책 운용의 문제가 다 담긴 말이었다.
그렇게 빛 샐 틈 없이 소통한다던 두 사람은 ‘빛 샐 틈 없는’ 짐작대로 함께 경질됐다. 그러나 김 전 부총리만 자를 수 없어 마지못해 장 전 실장도 물러나게 한 것이라는 점을 알 사람은 다 안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기대를 섞어 상황을 파악하는 것과 달리 국민들은 오히려 모든 것을 냉정하게 보고 있다. 김 전 부총리는 “경제 위기가 아닌 정치적 의사 결정의 위기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한 이후 경질됐지만,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경제도 위기, 정치적 의사 결정도 위기라는 생각이었을 것 같다.
후임자들을 보면 왜 바꾸었는지 알기가 어렵다. 이른바 ‘김&장의 갈등’ 같은 건 없거나 드러나지 않을 걸로 보이는 조합이라는 점 외에는 큰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다들 위기라는데, 경제정책의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한국갤럽)에서는 경제 상황이 앞으로 1년 동안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53%)이 ‘좋아질 것’(16%)이라는 예측보다 3배 이상 높았다. 대통령 지지율은 4주 연속 하락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 외에는 좋은 평가를 받은 게 없다.
문 대통령은 인사를 잘 못한다. 사람 고르는 눈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눈이 있긴 하지만 마음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한계상황에 처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경우든 다 걱정이다. 경제정책과 같은 경우엔 눈보다 더 중요한 게 생각인데, 그 생각이 무엇엔가 사로잡혀 있다면 더 걱정이다.
문 대통령은 9일 조명래 환경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에 대한 일곱 번째 장관 임명이다. 야당은 박근혜 정부 4년 6개월간 이렇게 임명을 강행한 인사가 총 10명인데 문재인 정부는 벌써 1년 반 만에 10명(헌법재판관 등 포함)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문제를 말로 덮고, 언어와 감성으로 호도하며 넘어가고 있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하면서 ‘캠코더’ 인사를 거듭하니 “우리 사람이 먼저다”라는 비아냥을 받는다. “봄이 온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에게만 봄이 온다”는 차별과 배제의 말로 듣는 사람들이 많다. 문재인을 ‘문재앙’이라고 바꿔 부르더니 요즘은 이 정부의 친북과 좌익성향에 대한 의심이 짙어지면서 청와대(靑瓦臺)를 적와대(赤瓦臺)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여야 5당 대표를 초청했다가 거부당한 뒤, ‘올드 보이’라 칭해지는 야당 대표들을 향해 “당리당략과 정쟁으로 어지러운 한국 정치에 꽃할배 같은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오셨으면 한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이런 말이 호소력이 있다고 생각한 걸까. 문 대통령이든 임 실장이든 여야 협력을 원한다면 직접 교류하고 부딪히면서 소통을 해도 성사되기 어려울 텐데 이런 방백(傍白)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임 실장은 7월에도 사의를 표명한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게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고 시처럼 말했다. “가을에 남북정상회담 등 중요한 행사가 많으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일을 해 달라”는 취지였다는 게 김 대변인의 설명이었다.
이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답방을 할 차례이니 가을이든 겨울이든 남북정상회담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첫눈은 이미 내렸다. 10월 18일 설악산에 내린 첫눈은 작년 11월 3일보다 16일이나 일렀다. 서울에 내려야만 첫눈인 건 아니다. 22일이면 소설, 계절은 겨울로 치닫는다. 탁현민 한 사람이 그만두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생각과 능력, 사람을 쓰는 눈과 판단이 걱정스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