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자동차 말리부는 고급 브랜드가 아니었다. 캐딜락, 뷰익, 올즈모빌, 폰티액 등 GM의 여러 ‘디비전’ 중 제일 아래인 쉐보레 디비전의 여러 모델 중에서도 가격과 이미지가 처지는 하위 모델이었다. 수수한 외관에 옵션도 그저 그런 이 차에 말리부라는 고급 이름을 붙인 건 풍광 좋은 캘리포니아 해변에 큰 수영장과 자쿠지(옥외 욕탕)가 딸린 호화주택을 꿈꾸는 서민들의 갈망을 공략하고 달래주기 위한 GM의 영악한 판매 전략일 따름이었다.
나는 미국에 머무는 동안 구경이나 실컷 다니겠다는 꿈을 이루려고 4년 묵은 이 말리부를 내 생애 첫 차로 골랐다. 가격(그때 돈으로 6800달러)도 좋았고 6기통에 차체가 듬직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많이 돌아다녔다. 아내와 다섯 살, 한 살짜리 딸 둘을 태우고 짐칸에는 큰아이 자전거와 둘째의 유모차와, 전기밥솥과 김치통, 아이스박스를 싣고 샌프란시스코에 요세미티에 그랜드캐니언에 라스베이거스에…, 주말이면 빼먹지 않고 미국 서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젊었으니 하루에 천 킬로미터를 달려도 피곤하지 않았다. 휘발유가 싼 데다 장거리 트럭운전자들을 위한 값싼 모텔에서 자고 전기밥솥으로 밥 해먹고 다음 날 길에 오르면 돈도 크게 안 들었다. 나는 미국을 내 나름 마음껏 즐겼다.
그 즐거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날, 미국 생활이 나보다 훨씬 오래인 선배가 아이보리 컬러의 내 애마를 훑어보더니 앞 타이어를 발로 툭툭 차면서 “이 차 편마모(片磨耗)가 심하네. 이것 보라고, 한쪽 편만 닳아서 이렇게 부풀어 올랐잖아. 이걸 어떻게 타고 다녔어? 타이어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차를?”이라며 혀를 찼다. 또 “당신, 이 차 이상한 거 못 느꼈어? 똑바로 가려면 운전대를 삐딱하게 잡았어야 했을 텐데?”라며 내 둔한 신경을 나무랐다.
휠 얼라인먼트가 효과 없는 이유가 마침내 밝혀졌다. 차축이 휘어져 있던 거다. 내가 산 차는 크게 충돌했거나 높은 데서 굴러 떨어진 전력이 있던 거였다. 타이어를 골백번 바꿔도 절대 바로 갈 수 없는 차였다. 사람 등뼈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차축도 통째로 바꿀 수는 없었다. 나는 이 차를 1년 반쯤 더 타면서 언제나 핸들을 삐딱하니 틀고 있어야 했다.
이달 초 한 신문에 “정책 수단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서로 충돌하고 있다. 휠 얼라인먼트가 안 돼 있다”라는 지적이 실렸다. 실력과 소신 있는 관료로 꼽혔던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변양호 씨가 한 말이다. 변 씨의 말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통령은 마침내 ‘김 앤 장’을 내보내고 그들 뒤에 있던 홍남기와 김수현을 그 자리에 집어넣었다. 휠 얼라인먼트를 한 셈이다. 한국이라는 자동차가 앞으로 똑바로 가지 않고, 심하게 흔들리며, 승객인 국민들의 피로가 갈수록 심해진다고 보고 내린 결론일 것이다.
그럼에도 차는 여전히 똑바로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완전히 새로운 타이어가 필요한 판에 이미 오래 달려 너덜너덜해졌고 편마모 역시 심각한 지경인 뒷바퀴를 앞으로 옮겨 끼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혹시 이 차도 차축이 휜 건 아닐까? 무슨 짓을 해도 절대 똑바로 갈 수 없는 차가 된 건 아닐까? 겁이 많이 난다. 식은땀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