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폐증 환자에 대해 장해급여를 지급하지 않도록 한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현대 의학으로도 완치가 어려운 진폐증 환자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치료 중이므로 장해급여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거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행정처분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판단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 이승원 판사는 김모 씨 등 8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미지급된 장해급여를 지급해달라고 낸 ‘미지급 장해급여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김 씨 등은 분진작업장에서 종사하던 중 진폐 판정을 받고 요양하다 사망한 노동자들의 유족이다. 이들은 숨진 노동자들이 요양승인을 받았던 당시 상태를 고려한 때 13급 장해등급에 해당한다며 이에 해당하는 장해급여, 미지급 보험급여 등을 지급해달라고 2016년 근로복지공단에 청구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다음 해 △장해급여는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 치유된 후 신체 등에 장해가 있는 경우에 지급되는 것인데 재해자들은 요양 중이어서 치유 상태에 있지 않았다 △요양승인 당시로부터 3년의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했다 등의 이유로 지급을 거절했다.
산업재해보상법에 따르면 ‘치유’란 ‘부상 또는 질병이 완치되거나 치료의 효과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고 증상이 고정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을 의미한다. 다만 진폐증의 경우에는 다른 병과 달리 현대 의학으로도 완치할 수 없고 분진이 발생하는 현장을 떠나도 진행이 계속되고, 진행 정도를 예측하기 어렵다.
재판부는 진폐증의 병리학적 특성을 고려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령은 곧바로 해당 장해등급에 따른 장해급여를 지급하도록 한 대법원 판결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재해근로자들이 진폐증과 그 합병증으로 요양 중이어서 그 증상이 고정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니더라도, 곧바로 장해등급에 따른 장해급여 지급을 청구할 수 있었다”며 “(근로복지공단은) 요양 중이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지급 거절 근거로 세운 소멸시효 완성에 대해서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요양 중이어서 장해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요양승인 결정이 있었던 때로부터 3년이 지나 장해급여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했다고 주장하는 태도는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